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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지옥은 바람 없는 바다... 모든 삶은 흐른다” 로랑스 드빌레르​
    문화 광장 2023. 6. 17. 11:48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지옥은 바람 없는 바다... 모든 삶은 흐른다” 로랑스 드빌레르

    프랑스 철학자 로랑스 드빌레르 인터뷰

    변화하는 바다 바라보면… 매일이 새로운 시작

    연달아치는 파도는 다 생김새 달라, 우리처럼

    거품 낀 자아에 우아함 없어, 수영이 무게 덜어줘

    아름다움은 정확하게 말해야… 철학이 곧 문학

    입력 2023.06.17 06:00

    ▲글로벌 베스트셀러 ‘모든 삶은 흐른다’의 저자, 프랑스 철학자 로랑스 드빌레르(Laurence Devillairs)./사진=로랑스 드빌레르 제공
    “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자기 자신’이라는 유일한 섬이 되자.”
    “바다가 위로가 된다면 그 첫 번째 이유는 극강의 아름다움 덕분이다.”
    “파도처럼 인생에도 게으름과 탄생, 상실과 풍요, 회의와 확신이 나름의 속도로 밀려온다.”
    -로랑스 드빌레르의 ‘모든 삶은 흐른다’ 중에서
    철학자가 의지할 수 있는 건 바다뿐인 듯하다. 프랑스 철학자 로랑스 드빌레르의 문장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고요한 해안, 격동하는 대양 속에서 당신이라는 파도, 당신이라는 배, 당신이라는 섬, 당신이라는 선원은 과연 어떤 표정으로, 어디로 가고 있을까.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의 튼튼한 바탕 위에, 흐르는 바다라는 은유로 우리 삶의 시야를 열어젖힌 ‘모든 삶은 흐른다’의 저자 로랑스 드빌레르를 인터뷰했다.
    드빌레르가 보내온 모든 답변은 백사장 위로 흐르는 피아노 연주 혹은 파도에 맞춰 나지막이 부르는 뱃노래 같았다.
    “바람이 불지 않는 바다는 지옥입니다. 등대는 바다를 이기지 않고는 바다를 길들이지 못한다는 걸 알아요. 등대는 겸손에 대한 교훈을 줍니다. 애를 써봐도 삶은 여전히 야생적이고 길들지 않죠. 길들지 않은 삶에 적응하기 위해서 평생의 시간이 걸립니다.”
    밤의 등대처럼 겸손한 ‘바다의 철학자’와의 대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은 ‘모든 삶은 흐른다’입니다. 물도 흐르고 시간도 흐르지요. 당신에게 ‘흐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한국어판 제목이 정말 마음에 드네요. 말씀하셨듯이 물도 흐르고 시간도 흐르지요. 특히 바다를 바라보거나 수영할 때요. 시간에는 그만의 고유한 경험이 있습니다. 시간은 흐르기도 하지만 동시에 멈춰 있기도 하고 확장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늘 시간이 있고, 시간이 많은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항상 부족한 듯한 느낌을 받고는 하죠.
    바다의 아름다움은 우리를 다른 차원의 시간으로 인도합니다. 모든 게 진정된 시간이자 내면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으로요. 그러려면 바다를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바다와 시간이 하나가 되는 걸 관망하기만 한다는 규칙을 따라야 해요.
    흔치 않은 경험이죠. 너무 바삐 흘러가고 여기저기 부딪히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그런 시간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해요. 우리가 바다 앞에 앉아 있지 않을 때도요.”

    ▲바다는 우리에게 자유를 미루지 말라고 한다.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우리를 기차역으로 안내하더니, 당신은 기어이 우리를 바닷가로 안내하는군요. 철학자인 당신은 왜 지금 바다로 가기로 결심했습니까?
    “제가 바다로 가기로 결심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바닷가에서 태어나지 않은 제게 바다는 새로운 발견이자 출현이었어요. 난생처음으로 바다를 봤을 때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바다를 보자마자 ‘바다와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바다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요.
    바다는 하나의 완전한 경험입니다. 영적인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하죠. 시인인 앙리 미쇼가 이를 저보다 더 잘 설명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바다가 마치 종교인 것처럼 바다에 열중한다.”
    수영을 하면 우리의 상태가 달라집니다. 더는 서 있지 않고 한 발짝씩 일직선으로 걷지도 않아요. 미끄러지고 흘러가며 떠다니죠. 수영이라는 경험과 가장 비슷한 건 하늘을 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바다로 간 두 번째 이유는 철학이었습니다. 제가 깨달은 게 있어요. 철학자들이 인생의 의미와 인간의 조건에 관한 핵심적인 내용을 얘기할 때 항상 바다의 이미지를 사용한다는 거였어요.”
    -저는 ‘노인과 바다’의 헤밍웨이, ‘모비 딕’의 허먼 멜빌, ‘타이타닉’과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이 떠오르는군요. 당신을 자극한 바다의 철학자들은 누군가요?
    “데카르트가 먼저 떠오릅니다. 자신이 성찰한 바를 무엇에 비유해서 묘사했냐면… 바로 익사였어요!
    “어제 명상을 했는데, 내 마음이 너무도 많은 의심으로 가득 차 내 힘으로는 잊을 수가 없게 돼 버렸다. 하지만 그 의심을 어떤 방식으로 해소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치 깊은 물에 갑자기 빠진 것처럼 너무 놀라서 발을 바닥에 딛고 서지도 못하고 헤엄쳐서 물에 계속 떠 있지도 못한다.”-데카르트
    데카르트의 그 유명한 ‘코기토’만큼이나 결정적인 문장입니다. ‘확신’과 ‘진실’을 찾는다는 건 바다에 나가는 것과 같다는 걸 보여 줍니다. 달리 말하면 육지에 닿을 거라는 보장이 없는 거죠.
    에픽테토스도 있겠네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있는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위대한 교훈을 바다와 항해에 빗대어 우리에게 전했죠.

    ▲격노하는 바다. 모든 항해는 모험이다.
    “항해를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항해사, 선원, 날짜, 적당한 때를 선택하는 건 할 수 있겠죠. 그런데 폭풍이 불어닥칩니다. 이 또한 내가 걱정할 일일까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그런데 배가 침몰했습니다! 내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뿐입니다.”-’담화록’ II, 5
    미셸 푸코도 저서인 ‘말과 사물’을 해안에서 사라지는 인간의 이미지로 마무리합니다.
    “우리 사유의 고고학이 쉽게 보여주듯 인간은 최근의 발견이다. 그리고 아마도 종말이 가까이 온 것 같다 (...) 장담하건대 인간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놓은 얼굴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미셸 푸코
    -말과 생각이 넘쳐흐르는 똑똑한 철학자들이 왜 굳이 바다의 이미지를 빌려 지혜를 나눴을까요?
    “바다는 존재와 세상의 신비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저는 ‘살아 있고’ ‘여기 있는’ 것의 찬란함을 말하는 에메랄드빛 바다, 격노하는 바다와 이 세상의 아름다움에 빠진 채 이 모든 질문을 하게 됐죠.”
    -당신이 선택한 언어는 문학인가요? 과학인가요? 철학인가요?
    “고백하자면 제가 선택한 게 아니에요. 그런 스타일로 쓰는 게 자연스럽기도 했고, 편집자인 마리 르루아가 도와주기도 했죠. 전 바다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려 했습니다.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에요. 왜냐하면 바다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하니까요.
    아름다운 건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보기만 해도 알 수 있거든요. 그 ‘보이는 것’을 생각으로 옮기고 시선을 단어로 치환하려고 노력했어요. 전 철학도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잘 쓰인 글이니까요. 전 철학의 언어가 지니는 음률이 좋아서 철학을 먼저 좋아했어요.”

    ▲바다의 현상학이라고 불릴만한 아름다운 철학책을 쓴 로랑스 드빌레르.
    -언어학의 거장이자 얼마 전 돌아가신 저의 스승 이어령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내가 당신의 죽음을 어떻게 기억할까, 라고 묻자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흔들리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고요. 당신은 파도 앞에 서서 무엇을 봅니까? 어떤 감정을 느낍니까?
    “아주 아름다운 이미지네요. 빅토르 위고도 “인간은 파도일 뿐”이라고 말했죠. 기자님의 질문에 답변하려고 정확한 문구를 찾아봤어요. (바다에 대한) 심상은 한국에서든 프랑스에서든 보편적이라는 걸 보여 드리고 싶어서요.
    “생각하는 파도는 인간의 영혼이다.”-’영불해협의 뱃사람들(Aux Marins de la Manche)’
    -저는 퓰리처상 수상 작품인 애니 프루의 소설 ‘쉬핑뉴스’를 좋아합니다. 닻과 돛, 고리, 밧줄, 해적, 포식자, 섬, 해안절벽, 항구... 거친 바다 앞에서 그래도 버티고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들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혹시 당신도 그런가요?
    “저는 바다의 적대적인 면모도 좋아해요. 이 세상 모든 게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란 걸 상기시켜 주니까요. 주도권을 가진 건 인간이 아니며, 인류 이전에 바다가 먼저 존재했고, 바다는 인간의 소유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야생이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대로 둬야 하고 길들이거나 소유하려고 하지 않아야죠.
    ‘본다’는 건 보기만 하고 다른 행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뜻해요. 그런데 인간은 주인이 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땅을 훼손한 것처럼 바다를 소유하려고 바다를 훼손하려는 게 걱정돼요. 전 바다가 반드시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바다가 인간의 새로운 고속도로가 되는 걸 원치 않아요. 바다는 망가지지 않은 마지막 영역이자 마지막 경계선이에요. 그대로 내버려 둬야 해요. 다른 생명체들도 누릴 수 있게 해줘야죠.”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
    -최근엔 영화 ‘타이타닉’을 다시 보고 감동에 젖었어요. 뱃머리에서 ‘나는 세상의 왕이다’라고 새처럼 몸을 겹쳐 날개를 펴던 잭과 로즈, 빙하에 부딪힐 때까지 춤추고 마시던 사람들, 침수되기 직전까지 연주하던 악단, 얼음장처럼 차가운 검은 바다 위로 구조하러 돌아온 구명보트와 로즈가 불던 호루라기 소리까지. 바다에는 정말 인생 항해의 모든 은유가 있는 것만 같습니다. 사막이나 산이 아니라 특히 바다에 인생의 드라마가 있는 이유는 왜일까요?
    “답변하기가 어렵네요. 저는 바다가 삶의 수수께끼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연달아 치는 파도는 저마다 생김새가 다른데, 우리의 하루하루도 비슷하잖아요. 또 시간이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하며, 바다도 삶도 그 깊이는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데다 분노할 때도 있고 진정될 때도 있죠.
    바다에는 수많은 격정과 흥분 그리고 기쁨이 있죠. 제 어린 시절에 그런 기억이 있어요. 바다를 향해 뛰어가고, 떠나고, 닻줄을 푸는 기억이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영화 ‘400번의 구타(Les 400 coups)’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남자아이가 멀리멀리 도망쳐서 바다로 가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장면 중 하나죠.”
    -최근에 제가 본 가장 비범한 바다 이미지는 영화 ‘헤어질 결심’의 안개 낀 바다였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 주인공이 도망쳐서 바다로 갑니다. 모래를 파고 들어가 몸을 숨기죠. 그건 그렇고 혹시 서핑을 해본 적 있습니까? 있다면 혹은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쉽지만 저는 운동과 친하지 못해요. 하지만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건 좋아하죠. 썰매도 좋아하고요. 서핑을 못 해서 아쉬워요. 서핑을 하면 훌륭한 삶의 교훈을 얻을 수 있거든요. 불확실한 미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게 노련한 서퍼가 보여주는 모습이죠. 파도와 하나가 되어야지 파도에 저항해서는 안 돼요.”
    -한국에는 해녀가 유명합니다. 그들은 숨을 참고 물속으로 들어가 바다의 정원에서 필요한 만큼만 전복을 따고, 동료에게 목숨을 의지한 채, 욕심내지 않고 매일을 살아갑니다. 위험을 알고, 바다에 감사하는 그들이야말로 철학자가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혹시 당신도 바다와 관련해서 그렇게 위대하게 느끼는 존재가 있는지요?
    “좋은 예시를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꼭 기억해 둬야겠네요. 제가 생각했을 때 바다의 위엄에 견줄 수 있는 존재는 고래예요. 제가 퀘벡에 있을 때 길을 걷다가 우연히 잠수하는 고래를 봤는데 숨이 멎을 뻔했어요. 만약 신을 실제로 본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로 떨리고 황홀했죠. 지구가 제게 비밀을 털어놓는 것 같았어요.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하겠더군요.”

    ▲영화 ‘아바타;물의 길’의 한 장면.
    -바다의 시간은 계속해서 다시 시작되는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사람들은 보통 바다의 시간을 반복되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파도가 끊임없이 치니까요. 제 생각은 달라요. 바다의 시간은 항상 새로워지고 너그러우며 풍족해요. 부족한 법이 없죠. 그래서 전 대양보다 바다(해안가)를 좋아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아주 많은 가르침을 주거든요.”
    -당신은 밀물과 썰물 중 어떤 상태를 더 좋아하거나 더 두려워합니까? 제가 아는 어떤 항해가는 적도의 바람 한 점 없는 대양이 가장 두려웠다고 하더군요.
    “바람이 불지 않는 건 말 그대로 지옥이에요. 지옥은 바람이 불지 않는 바다죠. 원래는 움직임 그 자체인 곳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우리의 모든 기대가 무산되니까요. 제가 가장 두려웠던 바다는 코르시카에서 본 지중해였어요. 온화하고 잔잔한 줄 알았던 휴양지의 바다가 맹렬해졌거든요. 바다의 강렬함에 압도되는 느낌이었지만 그 두려움도 좋았어요.”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를 바빠야 한다는 강박에 빠진 근대인으로 보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바다는 우리에게 자유를 미루지 말라고 한다지만, 인간은 무인도에조차 즐길 거리와 걱정거리를 다 싸 들고 가고 싶어 하지요.
    “그게 우리의 잘못이에요! 우리는 늘 뭔가를 해야 하고, 즐거워야 하며 바빠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죠. 바다는 그 반대로 하라고 우리를 독려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요. 전 아무것도 안 하는 게 가장 하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요. 파스칼도 ‘팡세’에 이렇게 적었어요.
    ‘우리는 침묵과 무위를 피한다. 침묵과 무위는 자신을 직시하게 하고 자기 자신,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고 행복에 필수적이라고 믿지만 대체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활동과 부산함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하기 때문이다.’-파스칼 ‘팡세’.

    ▲철학과 삶, 바다를 한데 녹여 프랑스 현지 언론의 극찬을 받은 책 ‘모든 삶은 흐른다’.
    -보자도르곶 파트도 영감을 주더군요.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믿지 말라는 바다의 조언을 우리는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까?
    “저는 계속 변화하는 바다의 모습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는 게 좋아요. 바다가 하늘, 바람, 태양과 나누는 대화에 들어가 보는 거죠. 그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도 좋아요. 그렇게 바다가 조금씩 탈바꿈해서 다른 모습이 되는 것을 지켜봅니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다른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아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수많은 낯선 것들이 자기 안에 꿈틀거리죠.”
    -한편 더도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우아한 자세인데, 자아에는 이러한 우아함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수영을 하면 자아의 무게를 바다에 내려놓을 수 있기에 수영은 나르시시즘을 덜어내는 연습이라고요. 수영이 어떤 원리로 나르시시즘을 덜어내도록 도울 수 있나요?
    “우리는 내가 생각하는 내 이미지, 내가 되고 싶어 하는 모습,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은 이미지에 갇혀 있어요. 수영은 자신을 잊는 행위예요. 자신을 벗어던지려고 수영을 하지, 나를 찾으려고 수영하지 않아요.
    저는 저 자신을 잊는 걸 매우 좋아합니다. 수영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바다가 되고 바다에 속하게 되는데 그때야말로 진정한 내가 되는 순간이죠. 자신에 대해 더는 걱정하지 않는 순간이요.”


    ▲‘인생을 배우려면 바다로 가라’고 말하는 프랑스 최고의 철학자 로랑스 드빌레르.
    -최근에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이유의 ‘중력과 은총’을 읽었습니다. 바다로 우리를 안내한 당신은 ‘중력과 은총’이라는 단어에서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아주 적절하게 짚어 주셨어요. 바다와 잘 어울리는 단어들이죠. ‘중력’은 저를 축소하고 망가뜨리고 구속하며 방해하는 반면 ‘은총’은 제게 ‘떠나라’고 말하는 바다를 연상케 해요. 바다는 제게 자유, 혹은 자유로워지는 법을 알게 해주는 은총의 스승이죠.”
    -육지는 바다를 안정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려고 애쓰지만, 바다는 정착하는 장소도 섬기는 주인도 없다.’ 등대 편에 있는 문장입니다. 바다를 예측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육지의 물건 중 등대만큼 위엄 있는 것이 또 있을까요
    “등대는 위엄 있죠. 위엄이 있는 만큼 필사적이고요. 등대는 바다를 이기지 않고는 바다를 길들이지 못한다는 걸 알거든요. 저는 등대가 겸손에 대한 교훈을 준다고 생각해요. 위로와 구원을 찾으려고 애써 볼 수는 있지만, 삶은 여전히 야생적이고 길들지 않죠. 이 길들지 않은 삶에 적응하려면 평생의 시간이 걸립니다.”
    -바다와 선원들은 따뜻하고 건강한 이기주의가 있어야 독립심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는 문장도 다정했어요. 바다를 대하는 선원의 태도는 이를테면 어떤 거죠?
    “선원들이 다 그런 철학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플로랑스 아르토(Florence Arthaud)나 이사벨 오티시에(Isabelle Autissier) 같은 선원이 떠올라요.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억센 의지를 보여 준 사람들이죠.
    제게도 바다에 가는 건 자유와 같은 의미예요. 항구를 떠나서 먼바다로 나아가는 것, 그 자체. 혹시 우리는 자기 삶에 너무 꼭 맞춰 사느라 멀리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요”
    -후반부에 ‘모비 딕’의 에이해브 선장이 등장한 것도 매우 적절했습니다.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은 원래의 질서로 되돌려놓기 위해 분노를 표출한다는 통찰이 놀랍더군요. 분노가 우리를 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허먼 멜빌은 ‘모비 딕’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에이해브 선장은 분노의 전형입니다. ‘모비 딕’으로 대변되는 소득도 없고 결실도 없는 현실과 싸우는 인물이죠. 사실 기자님의 질문이 정곡을 찔렀어요. 저는 분노를 초월하는 법을 몰라요. 그게 가능한지도 확실하지 않고요. 분노는 불과 비슷합니다. 몸과 마음을 덥히는 데는 사용할 줄 알아야 하지만, 자기를 불태우면 안 되죠. 하지만 사실 저도 그렇게 하는 방법을 아직 모르겠어요.”
    ‘분노를 초월하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다’는 철학자의 정직한 고백이 마음을 울렸다.



    ▲바다는 그 자체로 존재감이 있다.
    -모든 삶은 흐른다는 것을 매일 깨우치기 위해 바다 근처에 사는 것도 도움이 될까요? 저는 해안가에 살며 동화를 쓰는 것이 꿈입니다만.
    “솔직히 저는 바다에서 사는 것도 바다를 개발하는 것도 좋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바다에서 사는 유일한 방법은 바다가 우리를 소유하도록 하는 거예요. 랭보도 다음과 같이 말했죠.
    ‘그때부터 나는 초록빛 창공을 집어삼키는 (...)
    ‘바다의 시’에서 헤엄쳤다네.’-’취한 배(Le bateau ivre)’
    하지만 기자님의 꿈은 아주 멋지네요. 바다와 동화라니. 바다를 묘사하는 아이들의 말을 모아 보면 어떨지 정말 궁금하네요. 아이들은 바다와 노는 법을 알아요. 우리는 성인이 되면서 더는 놀 줄 모르게 됐지만요. 아이들은 덩치 큰 동물과 놀듯이 바다와 놀아요. 다소 불안하지만 생동감이 넘치죠.”
    -돌아보면 당신의 인생에서 돛과 닻 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했습니까?
    “당연히 돛입니다! 제 스승 페르난도 페소아의 조언을 마지막으로 들려드립니다.
    ‘물결과 위험과 파도에 몸을 맡기고 먼바다로 나아가자
    먼 곳으로 가자, 다른 곳을 향하여 가자
    떠나자, 떠나자, 완전히 떠나는 거다!
    내 몸 안의 피는 날개 없이 떠나기를 열망한다.’-’바다의 시가(Ode mari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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