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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안등 하나 없는 안심귀갓길 459곳…“오히려 피해 다녀요”
    지금 이곳에선 2023. 5. 29. 09:25

    보안등 하나 없는 안심귀갓길 459곳…“오히려 피해 다녀요”

    등록 2023-05-29 05:00

    수정 2023-05-29 07:40

    곽진산 기자 사진

    서울 3391개 안심귀갓길 분석

    지난 2일 밤 11시께 찾은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한 여성안심귀갓길. 데이터상 이 길에는 보안등 1개만 설치돼 있다. 곽진산 기자

    “사람도 없고, 어둡죠. 오히려 피해 다녀요.”

    지난 2일 밤 11시30분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한 독서실에서 나온 유은정(23)씨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상가 불이 아직 꺼지지 않은 길로 빠르게 이동했다.

    유씨가 빠져나온 골목은 동작경찰서가 관리하는 ‘여성안심귀갓길’ 중 하나다. 하지만 거리 98m의 이 골목엔 안심귀갓길 시설물 중 ‘보안등’ 하나만 설치돼 있다. 상가 불이 꺼진 밤이면 길에는 짙은 어둠이 내려앉는다.

    유씨는 “안심이 되는 길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길에서 만난 서정민(29)씨는 “길에 있는 표기도 밤이라 잘 보이지 않는다. (안심귀갓길인지 아느냐고) 묻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라며 “길 다닐 때 안전하다고 느낄 정도의 시설물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밤길 여성의 안심 귀가를 위한 종합 대책으로 2013년 ‘안심귀갓길’ 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다.

    28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행정 문서상 안심귀갓길로 지정돼 있지만 보안등 하나 없이 방치된 안심귀갓길이 서울에만 459개로, 전체 3391개(서울경찰청 안심귀갓길 경로 기반 링크 기준) 가운데 14%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1일 찾은 동국대학교 인근 한 골목길 58m 구간에도 안심귀갓길 시설물이 하나도 없었다. 대학교 근처이긴 하지만, 번화가인 서울지하철 충무로역까지 800m 정도 동떨어져 있어 이곳에 거주하는 이들이 아니면 발길이 뜸한 곳이다.

    김아무개(31)씨는 “상가 때문에 밤에도 엄청 어두운 것은 아니지만, 마음 놓고 다닐 정도로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안심귀갓길에 설치되는 시설물은 112 신고가 바로 가능한 안심벨과 시시티브이(CCTV), 안심귀갓길을 알리는 안내표지판 및 바닥 표기, 보안등, 안심귀갓길 서비스 안내판(경찰이 관리한다고 알리는 안내판), 현 위치를 알릴 수 있는 번호가 적힌 112 위치신고 안내판, 가로등 등 8개다.

    안심귀갓길에 대한 시민들의 못미더운 반응은 이유가 있었다. 안심귀갓길 중 관련 시설물이 1개만 설치된 길은 561개(16.5%), 2개가 설치된 길은 569개(16.8%), 3개인 곳은 492개(14.5%)였다. 2개만 설치되더라도 평균(1.27개) 이상이다. 시설물이 3개 이하인 길은 전체 3391개 중에서 2081개로 61.4%에 달했다. 시설물이 3개 이하인 곳의 길에선 시시티브이나 보안등 등의 주요 시설물이 없는 곳이 대다수였다.

    주요 시설물 중 하나인 시시티브이도 아직 많은 길목에 설치되지 않았다. 시시티브이가 1개도 없는 길은 2124개(62.6%)였다. 보안등이 하나도 없는 길도 총 606개(17.9%)에 달했다.

    시설물 1~2개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

    윤우석 계명대 교수(경찰행정학)는 “‘안심’이란 이름의 보행로는 1~2개의 시설물이 아니라 다양한 조처로 시민들이 인지할 수준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러 시설물이 종합적으로 더해져 보행자에게는 ‘안전하다’라는 생각을, 범죄자에게는 ‘관리되는 구역’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이 모델의 기본 구성이다.

    그나마 안심귀갓길에 설치된 전용 시설물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기도 한다. 용산구의 한 안심귀갓길 안심벨은 주변 가게에서 놓은 비품이나 쓰레기 등 때문에 가려 있었다. 동작구의 다른 길에선 안심벨이 전봇대 뒤쪽에 설치돼 보행자가 한눈에 식별하기 어려웠다. ‘여성안심귀갓길’이라 적은 노면 표기는 훼손된 사례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또 이 표기는 밤이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안심귀갓길 시설물이 모자라는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보안등은 주민들이 “너무 밝다”며 민원을 제기한다. 시시티브이는 예산이 많이 들고,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고 한다. 안심벨은 “장난으로 눌러보는 사람이 많아 설치하기도 어렵고 동시에 (눌러볼 수도 없어) 관리도 어렵다”고도 했다. 안심귀갓길을 알리는 바닥 표기도 도로 사정과 맞지 않아 제대로 설치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나마 관리되는 안심귀갓길은 비교적 넓은 길들뿐이다. 골목은 나뭇가지처럼 뻗어 있는데, 여전히 그 세세한 골목은 데이터로 시설물 상태를 확인할 수 없다. 채정수 서울경찰청 생활안전계장은 “곁가지로 뻗은 길에는 관리가 미흡할 수 있다”고 했다. 경찰이 안심귀갓길 전용 범죄 신고 데이터를 따로 관리하지 않아 예방 효과를 분석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지정된 길 위의 범죄 신고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3월 말 서울 강남에서 벌어진 ‘납치·살인 사건’ 이후로 시민들의 충격도 큰 상황이다. 각각 사고 1㎞, 1.9㎞ 반경에 안심귀갓길이 있었다. 수서경찰서는 사고 이후로 현장 주변으로 시시티브이 화상 순찰을 강화하고 시시티브이도 추가로 설치하기로 했다. 현재 주민 협의회를 진행 중인데, 이 협의가 끝난 뒤에 범죄 예방 시설물 설치도 진행할 방침이다.

    훼손돼 식별하기 어려운 여성안심귀갓길 바닥 표기(왼쪽)와 가게 비품에 쌓여 가려진 안심귀갓길 안심벨.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한 여성안심귀갓길 바닥 표기. 곽진산 기자

    어떻게 분석했나
    ‘안심귀갓길 사각지대 찾아서’는 서울시의 안심귀갓길 경로 기반 링크 자료(서울경찰청 제공)를 토대로 했다. 안심귀갓길은 362개지만, 데이터가 3391개로 쪼개진 이유는 교차로가 없는 ‘직선 구간’을 따로 나눠 집계했기 때문이다.
    안심귀갓길 최초 시작점에서 교차로까지를 ‘한 개의 길’로 봤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10m 이내의 짧은 길이 데이터에 포함돼 있다. 현실적으로 전수조사는 할 수 없기에 한계로 남아 있다.
    시시티브이와 안심벨은 안심귀갓길의 교차로에 주로 설치된다. 두 시설물 데이터는 하나의 길에만 포함된다.
    사거리는 길이 4개로 쪼개지는데, 이 경우에는 하나의 길에만 시시티브이, 안심벨 데이터가 적용된다. 또 시시티브이가 골목을 비추는 가시거리도 분석 대상에서 고려하지 않았다.
    데이터 자체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경찰이 해마다 시설물을 보수·점검하는 과정에서 새로 생긴 시설물을 반영하지 않았을 수 있다.
    또 경찰이 제공한 정보를 서울시에서 다시 분류한 자료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데이터가 제대로 작성되지 않았거나 누락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결함은 정부 기관의 데이터 관리에 달려 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93643.html?_ns=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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