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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가니스탄 폭탄테러로 숨진 윤장호 병장은 누구
    지금 이곳에선 2007. 2. 28. 18:13

     

    아프가니스탄 폭탄테러로 숨진 윤장호 병장은 누구/ 뉴욕서 고교시절 클린턴대통령상 받은 수재


    中 1학년 마치고 유학… 대학원 다니다 軍입대
    어머니 뇌출혈 소식 듣고 삭발 기도한 효자
    작년9월 “여긴 위험한거 없어요” 마지막 편지

     

    전현석기자 winwin@chosun.com
    박시영기자 joeys7@chosun.com
    입력 : 2007.02.28 00:06 / 수정 : 2007.02.28 09:10 \

     

    “(아빠, 엄마) 여기 위험한 거 하나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구 6개월 동안 건강히 있다가 갈 테니까 그때 봐요~. 그럼 나중에 전화할게!”
    27일 폭탄 테러로 숨진 윤장호(27) 병장이 아프가니스탄 파병 직후인 2006년 9월 29일 부모님께 보낸 편지가 ‘마지막 편지’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고(故) 윤장호 병장은 효심이 강하고 공부도 잘하는 청년이었다.

    아버지 윤희철(63·부동산 중개업)씨와 어머니 이창희(60)씨의 2남1녀의 막내로 1980년 9월 21일 태어난 윤 병장은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1994년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유난히 자립심이 강했던 아들을 위해 부모는 유학을 허락했다.

    • ▲ 27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세력의 폭탄테러로 사망한 다산부대 윤장호(27 사진 가운데)병장이 부모님과 다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故윤장호 미니홈피

    미국으로 떠난 후 윤 병장은 1995년 딱 한 번 귀국한 이후로는 2004년까지 한국에 오지 않았다. 윤 병장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오지 못하게 했다. 가족이 그리워 전화기에 대고 우는 사춘기 아들(윤 병장)에게 아버지는 “네가 한국에 오면 유학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다른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니까 오지 말라” 했고, 윤 병장은 그대로 따랐다.
    뉴욕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윤 병장은 고등학교 때 클린턴 대통령상을 수상할 정도로 수재였다. 어머니 이창희씨는 “평소 자립심이 강해서 외국에 혼자 떨어져 있어도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미국 인디애나대 국제경영학과에 입학한 윤 병장은 집안 형편을 걱정해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마련했다. 어릴 때부터 신앙심이 깊었던 윤씨는 매주 교회에서 고등부 교사 활동을 했으며, 교회 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미국 유학 중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삭발을 하고 한달 동안 새벽 기도를 다니기도 했다.

    2003년 말 졸업을 앞두고 윤씨 부부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윤 병장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었다. 직접 부모님을 자동차로 모시고 플로리다주(州) 마이애미 해변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2003년 12월 대학을 졸업한 윤씨는 켄터키주 남(南)침례 신학 대학원에 입학해 공부에 전념했다. 그러나 그는 국방 의무를 저버리지 않고 2004년 12월 군복무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통역 시험에 합격한 윤씨는 2005년 6월 통역병으로 군입대를 했고, 서울 송파구 특전사 본부에 배치됐다.

    윤 병장은 제대를 9개월 앞두고 아프가니스탄행을 자원했다. 중동지역은 테러 때문에 위험하다고 가족들이 말리자 윤 병장은 “이왕 군대 생활 하는데 영어를 잘 하는 내가 통역으로 나라를 돕고 싶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신다”고 말했다.
    윤 병장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생활을 하면서도 월급을 아껴 집에 보내주곤 했다.
    윤 병장은 다음달 14일 귀국해 6월 제대할 예정이었다. 윤 병장은 “귀국하면 한국에서 취업해 부모를 평생 모시겠다”고 했었다.  윤 병장은 지난해 9월 아프가니스탄 바그람기지 다산 부대에 배치된 이후엔 부모와 인터넷 화상 통화를 자주 했다.
    “제대하면 10년 넘게 제대로 못 본 아빠 엄마 얼굴 계속 볼 테니까 기다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다 맛있으니까 한번이라도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고 싶어.”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이렇게 부모에게 사랑을 전한 윤 병장은 끝내 부모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윤 병장이 보낸 마지막 편지>

    엄마, 아빠에게
    안녕^^ 몸 건강히 잘 있지?
    이 편지가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내일까지 내라고 하니까 2, 3주 안에는 가겠지?
    여기 생활은 괜찮아. 한국에서 군생활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미군들도 많아서 영어도 쓰고 한국식당에서 밥 해주는데 반찬도 많고 군대밥보다 맛있고 고기도 매 끼니마다 나와.
    당분간은 엄마랑 아빠랑 둘이 있겠네.
    형이랑 누나도 없는데 심심하겠다..ㅋㅋ
    여기 위험한 게 하나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구 6개월 동안 건강히 있다가 갈 테니까 그때 봐요.그럼 나중에 전화할게!!
    2006.9.29
    아프가니스탄에서 막내 장호가

    PS. 집 어떻게 할거야? 잘 생 각해보고 기도해 보세요^_^

     

     

    ‘미부통령 방문’ 극비정보 새…정확한 시간까지 파악 기지 침투 어렵자 검문소서 폭탄 터뜨려
    尹병장, 기능공 교육생들 안내하다 참변
    체니는 폭탄 터지자 방공호로 긴급 피신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bemil@chosun.com
    이태훈기자 libra@chosun.com
    입력 : 2007.02.28 00:25 / 수정 : 2007.02.28 00:39

     

    “쾅, 쾅!”

    27일 오후 2시50분쯤(한국시각·현지시각 오전 10시20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북동쪽으로 50㎞쯤 벌어진 바그람 미 공군기지의 첫 번째 검문소(1번 게이트) 앞에서 잇따라 두 차례 폭발음이 울렸다. 테러범이 일종의 사제(私製) 폭발물인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급조폭발물)를 몸에 감고 있다 터뜨려 큰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 ◆사건 당시 상황

      폭발물의 화염과 파편은 기지 정문 근처에 있던 한국군 다산부대(건설/공병부대) 소속 윤장호(27) 병장을 덮쳤다. 윤 병장은 이날 바그람 기지 내에 있던 다산부대로 기능공 교육을 받기 위해 찾아온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2명의 정문 출입을 돕기위해 나와 있었다. 윤 병장은 어렸을 때 미국에서 유학해 영어에 능통했다. 이 때문에 기지 경계를 맡고 있는 미군과 기능공 교육을 받는 아프가니스탄 현지인들의 의사소통을 위해 통역과 안내를 자주 맡았다. 기능공 교육은 다산부대가 현지인들의 인심을 얻기 위해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사업이었다.

      이날 기능공 교육을 받기 위해 바그람 기지를 찾은 아프가니스탄 민간인은 모두 8명. 이 중 6명은 먼저 도착해 다산부대 행정보급관(상사)이 안내해 들어갔고, 윤 병장은 뒤늦게 온 2명을 안내하기 위해 기다리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6명을 먼저 안내해 기지 안으로 들어간 상사는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구했다.
      윤 병장은 폭발 후 미군들에 의해 기지 내 병원으로 급히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사건 발생 2시간20분 만인 오후 5시10분 끝내 숨을 거뒀다.

      사고 당시 부대내 미용실에서 일하던 김주태(39)씨는 “테러가 있었다는 방송을 듣고 급히 부대 내 대피소로 피했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후 식당에 갔더니 모두 식사를 못하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있었다”며 “사고 현장인 게이트는 폐쇄됐다”고 전했다. 현지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는 김주선씨는 “사고후 주민들이 통곡하며 시신들을 메고 가면서 ‘알라’ ‘알라’라고 외쳐 댔다”며 당시의 참혹한 현장을 전했다.

      이날 테러로 발생한 40여명의 사상자 중 사망자 미군 1명과 군속 1명은 화물 트럭에 타고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대기하던 중이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현지 상점 직원 아즈몰씨는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도 커다란 진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바그람 기지 사령관 제임스 보너(Bonner) 중장은 “테러범이 삼엄한 보안 조치 때문에 기지 내부로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현장에 있던 일부 병사와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테러를 감행한 듯하다”고 말했다.

    • 합참 브리핑 27일 저녁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 박정이 소장이 윤장호 병장의 목숨을 앗아간 아프가니스탄 미 공군기지 폭탄테러 사건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허영한기자

    ◆체니 왜 갔나

    딕 체니(Cheney) 미 부통령은 이날 파키스탄에서 페르베즈 무샤라프(Musharf) 대통령을 만나 탈레반의 공세 강화에 대한 ‘미국의 심각한 우려’를 전달한 뒤 아프가니스탄으로 왔다. 수도 카불을 찾아 하미드 카르자이(Karzai)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을 만나기 전 그는 바그람 공군기지의 미군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깜짝 방문’을 했다. 기지에서 체니의 일정은 미군 병사들과 아침을 먹고 현지 지휘관들과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결과적으로 이 ‘깜짝 방문’이 애꿎은 한국 병사의 죽음으로 연결된 셈이다. 체니 부통령은 이날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오만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큰 폭발음이 들린 뒤 정보 장교들이 찾아와 ‘기지 정문에서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했다’며 나를 가장 가까운 방공호로 대피시켰다”고 말했다. 탈레반 대변인 카리 유세프 아흐마디(Ahmadi)는 AP·dpa통신과의 전화통화에서 “우리는 체니가 기지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그에게 가려고 계획했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퇴역 장성 출신의 정세분석가 탈라트 마수드(Masood)는 “체니 부통령의 기지 방문 시간을 정확히 파악해 폭탄테러 공격이 감행된 것은, 현지 정보기관들이 이미 탈레반과 국제테러조직인 알 카에다 조직원들에 의해 침투당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파키스탄의 다른 대테러 전문가도 “그들은 적어도 체니 방문 수일 전에 정보를 입수한 것이 분명하다. 반나절 정도에 준비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아프가니스탄 파병 동의·다산부대는

    기술·의료지원 등 현지인 구호활동

     

    최경운기자 codel@chosun.com
    입력 : 2007.02.28 00:21

     

    폭탄테러로 우리 군 병사 1명이 숨진 아프가니스탄의 동의·다산부대는 9·11 테러 직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이후 파병된 다국적군의 하나로, 기술·의료 지원 등 구호활동을 위해 파병된 부대다.27일 폭탄테러로 숨진 윤 병장이 소속된 다산부대는 공병부대로 2003년 2월 파병됐다. 현재 147명의 병력으로 구성돼 전후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해 건설 및 토목공사, 한·미 연합 지방재건단 지원, 대민 지원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해왔다.

    다산부대보다 앞서 2002년 9월에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동의부대는 국군의료지원단으로, 현재 58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동맹군과 현지 주민을 대상으로 의료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2002년 병원을 연 뒤 최근까지 현지인 22만명의 진료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통과된 국회 파병연장안에 따라 올 연말까지 활동이 계획돼 있었다. 이들 부대는 이외에도 태권도 교실, 한글교실을 운영하면서 지역주민들과 친목을 다져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주로 미군기지 내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경계병력으로는 해병대 20여명만 파견돼 있다.

    다산·동의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바그람 기지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북쪽으로 50km 거리에 있다. 이 기지는 옛 소련 군용비행장으로 사용됐던 곳으로 가로 4㎞, 세로 1.5㎞에 달한다. 이곳엔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미군 주력부대인 25사단 7000여명과 미 해병대, 공군, 해군 그리고 17개 동맹군 등 1만 여명이 집결해 있다. 2003년에는 기지 인근에서 탈레반 및 알카에다 잔당을 수색하던 미군 헬기 1대가 추락해 5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전쟁없는 곳에서 편히 쉬소서” 네티즌 추모물결 윤 병장 미니홈피에 1만명 방문… 400명 추모글

     

    박수찬기자 soochan@chosun.com
    입력 : 2007.02.28 00:03

     

    “당신이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서 바친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아프가니스탄 파병 중 폭탄 테러로 생명을 잃은 고(故) 윤장호(27) 병장에 대한 네티즌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윤 병장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들은 윤 병장의 싸이월드 미니홈피(www.cyworld.com/aspire1014)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글을 올리고 있다.
    아라크에 파견된 자이툰 부대 공병대대에서 전역했다는 김태경씨는 “파병 전우여 고이 잠드소서”라며 명복을 빌었다. 고경찬씨는 “전쟁도 다툼도 미움도 없는 곳에서 부디 편히 쉬시길 빈다”며 “다음 생에는 평화로운 시대에서 꿈을 이루시길 바란다”고 적었다. 이날 1만명 안팎의 네티즌이 윤 병장의 미니홈피를 찾았고 400여건의 추모글을 남겼다.

    “갔다오면 제대”라는 제목이 달려있는 윤 병장의 미니홈피에는 파병 직전인 9월 9일 쓴 것으로 추정되는 “라덴이형(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 잡으러 간다”는 글을 썼다. 빈 라덴이 은거한 것으로 알려진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 갔던 윤 병장은 제대를 불과 3개월 남기고 27일 오후 자살 폭탄 테러로 숨졌다.

    (조선일보 2.28)

     

    ***고 윤장호병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ㅜㅠ

    윤병장의 희생은 개인가족사 의 슬픔만이 아니라 국가의 커다란 손실이기도 하다.

    수재였다는 윤장호병장은 " 갔다오면 제대"  라는 글귀가 영원히 묻히게 됐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자했던 청년 고 윤장호 병장님 ....

    당신의 주검이 우리역사에 길게 자리 할것입니다.

    고이 잠드세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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