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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기로운 유럽 생활 / '조용해진' 미래를 위한 금요일
    지금 이곳에선 2024. 3. 26. 10:41

    슬기로운 유럽 생활 / '조용해진' 미래를 위한 금요일


    VOL.20|2024.03.18

    안녕하세요, 독자님
    유럽에서 날아온 스무 번째 편지를 개봉해 주셔서 오늘도 감사합니다. ✈️
    비가 안 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던 겨울을 지나 드디어 독일에도 봄이 왔습니다. 아까운 봄 날씨를 즐기고자 가끔 버스나 열차를 타지 않고 걸어보곤 하는데요. 그렇게 걷던 중 소규모 기후환경 시위대를 마주쳤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때 '잘 나갔던' 독일의 기후환경 시위, 요즘에는 많이 주춤해진 듯하기도 하고... 그래서 한번 다뤄보기로 했습니다. 🚲
    '조용해진' 미래를 위한 금요일
    그레타 툰베리. 아마 많은 분께서 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툰베리는 2018년 스웨덴에서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FFF)이라는 시위를 전개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당시 툰베리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거리에 나가 기후 위기 대응을 요구했는데요. 스웨덴을 시작으로 FFF는 전세계로 확산했고, 많은 이들의 여기에 동참하게 됩니다. 독일에서도 FFF 활동이 무척 활발했습니다.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지와 응원을 받았고요.

    그러나 요즘 독일에서 FFF에 주목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지역지인 아우크스부르크 알게마이네가 지난해 11월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 3분의2가 "FFF는 실패했다"고 답했습니다. 대중적 관심이 떨어지면 시위는 힘을 잃습니다. 이에 일부 지역에서는 FFF가 아예 해체되기도 했습니다.
    FFF 인기 하락 요인은 뭘까요. 일단 기후환경 시위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독일 여론조사기관 알렌스바흐가 올해 초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대한 독일인의 관심이 전쟁 위협, 인플레이션, 통제되지 않은 이민 등보다 적다고 합니다.
    도이체벨레 등 일부 독일 언론은 툰베리의 변심(?)이 FFF 인기 하락을 가속화했다고 봅니다. 툰베리가 기후환경 외의 다른 정치외교적 사안에 관심을 보이면서 FFF에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크게 실망했다는 겁니다. 툰베리는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이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팔레스타인 전통 의상을 착용한 채 "점령된 땅에는 기후 정의가 없다"고 외친 바 있습니다.

    '너무 과격한' 마지막 세대
    FFF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진 건 '과격 시위'가 부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부수고 파괴하는 식의 시위가 뜨면서 등교를 거부하는 식의 다소 온건한 시위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과격 시위 최전선에 '마지막 세대'가 있습니다. 여러 국가에서 같은 이름으로 활동 중이기는 하지만, 독일 마지막 세대는 화석 연료 사용 제한 등을 외치며 2022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세대의 특기는 '도로 점거'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도로 점거'가 아닙니다. 본드를 활용해 자신의 신체 일부를 도로에 붙이는 방식으로 시위를 전개해왔습니다. 이들은 동시에 정부, 기관, 기업이나 박물관, 미술관 등에 페인트를 뿌리는 시위도 전개했습니다. 지난해 9월에는 독일 통일 상징이자 대표 관광명소인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에 주황색 페인트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세대에 대한 대중적 주목도가 높다고 해서, 대중적 지지를 많이 받는 건 결코 아닙니다. 일반 시민들뿐만 아니라 기후환경 운동을 선도해온 녹색당 등으로부터도 이들은 외면을 받았습니다. 독일 타게스샤우가 지난 1월 보도한 바에 따르면 베를린 검찰청이 지난 2년 간 검토한 마지막 세대 관련 사건만 약 3,700건일 정도로 범죄에 많이 연루됐기 때문입니다.
    조용하면 조용한 대로, 시끄러우면 시끄러운 대로 관심에서 멀어진 기후환경 시위. 이렇게 헤어나올 수 없는 위기에 빠져버린 걸까요. 두 그룹 모두 이런 해석은 거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전략'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날을 꿈꾸고 있거든요.
    FFF는 '연대 세력 확대'를 통한 부활을 꿈꾸는 듯합니다. FFF는 얼마전 독일 공공서비스노동조합연합인 베르디의 시위 현장에 나나타 "독일 연립정부가 대중교통과 기후 정책을 탈선시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고, 독일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 반대 집회에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마지막 세대는 지난 1월 "기후 파괴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대결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중을 상대로 불편을 초래하는 대신, 기후 위기를 심화하는 특정 기업, 기관을 직접 겨냥하는 활동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들이 꾸는 '부활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요? 문득 한국에서는 어떤 기후환경 관련 시위가 전개되고 있는지도 궁금해지네요. 독자 여러분께서 아신다면 답변 보내주세요! (^^)


    '나의 몸은 나의 것'
    시몬 베유
    지난 4일 프랑스가 전세계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프랑스 양원이 합동회의를 열어 '임신중지(낙태) 자유'를 헌법에 명시하는 개헌안을 가결했기 때문입니다. 임신중지의 자유를 헌법에 명문화한 세계 유일한 국가가 된 프랑스에 대한 소식은 한국일보에서도 소개한 바 있습니다.
     

    당시 표결을 두고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프랑스는 여성의 몸은 여성의 소유이며 누구도 여성의 몸을 대신 처분할 권리가 없다는 역사적 메시지를 전세계에 보냈다. 이는 '시몬 베유'와 그 길을 닦은 모든 이들의 두 번째 승리다."
    그리고 이틀 뒤 같은 이름이 또다시 등장했습니다. 프랑스 동전을 주조하는 파리 조폐국이 베유 얼굴을 새긴 새 동전 디자인을 공개한 것입니다. 조폐국은 미국 출신 흑인 가수인 조세핀 베이커, 여성 최초 노벨상 수상자 마리 퀴리 등과 함께 베유를 동전에 넣기로 했다면서 "세 명의 뛰어난 여성이 모든 이에게 매일 영감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기사도 한국일보가 소개했었는데요.
    베유, 그는 대체 어떤 업적을 세웠길래 프랑스에서 이렇게 영향력이 큰 것일까요?
    시몬 베유(1927~2017)는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시절인 1974년 5월 보건부 장관으로 발탁됩니다. 그 해 11월 26일, 베유는 '임신 10주 이내 임신중지를 합법화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합니다. 당시 임신중지가 불법이었던 프랑스에서 많은 여성은 원하지 않는 아이를 낳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거나 이런 상황을 피하고자 불법 수술 또는 원정 수술을 감행하다 위험에 빠지곤 했는데, 이런 상황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게 그의 굳은 의지였습니다.
    법안을 제출하며 베유는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어떤 여성도 가벼운 마음으로 임신중지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임신중지를 했거나, 고민하는) 여성이 부도덕한 여성도 아닙니다. 이들은 우리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우리는 대부분 알지 못합니다. 멈춰야 할 것은 임신중지가 아니라 많은 이들을 비극으로 몰아넣는 이 불의입니다." (프랑스 BFM TV가 게재한 연설 전문)
    대다수가 남성이었던 당시 의회에서는 야유와 조롱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격론 끝에 같은 해 12월 베유법은 의회에서 가결됐고, 이듬해 법이 시행됐습니다. 이후 베유는 '여권 진보'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1979년부터 3년 동안은 유럽의회 초대 선출직 의장을 지내 유럽 통합의 상징으로도 여겨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리베라시옹은 당시 베유의 연설문이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이달 8일부터 약 6개월 간 전시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며 이런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연설문 페이지 일부가 누렇게 변하고 담뱃불로 인해 구멍이 났습니다. 1974년 11월 26일 의회 연설 직전 연사의 우려가 컸다는 증거일까요, 아니면 그저 담배를 많이 피웠던 연사의 경솔함일까요." 가서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을 마구 자극하는 기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프랑스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꾸준히 확대되어 온 것은 베유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거 모든 이들의 노력을 열매로 만들고, 이후 여권 증진 운동에 동력을 제공한 장본인이 베유이기에 현직 총리도, 프랑스 동전도 그를 다시 한번 소환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인권 증진에 후퇴가 없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소년들이 깨어났다, #미투가르송"
    오늘은 프랑스 이야기를 하나 더 소개해 볼까 합니다.
    2017년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미투 운동' 기억하실 겁니다. 이 운동은 당시 할리우드 거물 영화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으로부터 입은 성 범죄 피해를 '해시태그'(#)와 함께 공개적으로 고발한 데서 시작된 캠페인이었습니다.
    "나도 당했다(Me too)"는 폭로는 "가해자가 자신의 범죄 뒤에 영원히 숨어있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에게 각인시켰습니다. 성 범죄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기에 미투 운동에 참여한 것도 대부분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프랑스에서 '남성 미투 운동', '미투가르송'(#MetooGarçons)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프랑스어인 '가르송'은 소년이라는 뜻입니다.
    미투가르송을 시작한 이는 프랑스 배우인 오렐리앙 위크(43). 그는 최근 이런 폭로를 했습니다. "11살 때부터 15살 때까지 소속사와 수행원들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당부합니다. "학대를 당한다고 해서 당신이 '남자답지 않은 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지 안다. 두려워하지 말라. 영화 속 남자들은 깨어나고 있다." 영화 산업에 속한 남성들만을 향한 호소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남자들이 아픔을 딛고 세상에 나와 성폭력 근절에 나서주기를 바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이후 온라인상에는 비슷한 폭로가 쏟아졌습니다. "매년 여름마다 보던 사촌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9살 때부터 15살 때까지 양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했다." 유명 인사들도 동참했습니다. 앤디 커브랫 프랑스 하원 의원은 "나는 3~4살 때 학대를 당했다"며 "우리는 저절로 낫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우리 스스로를 고치자"고 말했습니다.

    미투가르송이 7년 전 미투 운동처럼 엄청난 속도로 번지거나 파괴력을 발휘하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위크가 지적했듯, 남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고정관념 등 때문에 많은 이들이 폭력 및 학대 사실을 드러내기를 꺼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그럼에도 7년 전 미투운동이 그랬듯, 가해자가 영영 자신의 범죄 뒤에 숨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사회에 다시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피해자가 미투가르송에 동참한다고 해서 과거의 아픔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오늘도 독자님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의견과 함께 슬유생을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이번 주도 무탈하고 풍족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 I love reading your articles. Thank you.
    → 슬유생 연재 이래 첫 영어 의견을! ㅎㅎ 감사합니다.
    💬 한국은 의사들이 18년 간 인원을 동결하고 있는데 지금 갈등이 최고조이지요. 유럽은 어떤 시스템인지요? 병원 이용 시스템, 노인 요양 시스템, 간호사 업무의 범위와 독립성.
    → 유럽에서도 국가마다 의료 체계가 판이하게 달라 특정 시스템과 비교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슬유생이 아니더라도 한국일보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전하게 된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 외식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 독일의 경우 높은 인건비 등으로 한국보다 외식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요리 실력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
    💬 레터를 읽고 올해는 옷을 덜 사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지구야 미안해 :)
    → 동지(?)를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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