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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가 잊어버린 ‘주거 빈곤’의 의미
    지금 이곳에선 2023. 11. 16. 10:58

    국가가 잊어버린 ‘주거 빈곤’의 의미

    윤석열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전년 대비 4분의 1 넘게 줄였다. 대신 공공분양 사업 예산을 크게 늘렸다. 윤석열 정부는 ‘무주택 서민’과 ‘저소득층’을 호환 가능한 개념으로 인식한다.

    기자명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입력 2022.12.14 06:17795호

    11월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사IN 이명익

    윤석열 정부가 내년도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약 5조7000억원 깎아서 제출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삭감된 예산을 일단 복구시켰으나, 최종적으로는 기획재정부 동의가 필요하다. ‘윤석열표 예산’ 대 ‘이재명표 예산’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서 공공임대주택이 정치의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공공임대주택이란 국가나 지방정부, 공공기관이 예산이나 기금으로 마련해 임대하는 주택을 말한다.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이 2022년 예산안(본예산 기준)에서는 20조원 남짓이었는데 2023년에는 15조원을 겨우 넘는다. 약 5조7000억원이 깎였다(〈그림 1〉 참조).

    공공임대주택은 크게 건설·매입·전세임대로 나뉘는데, 가장 많이 예산이 깎인 항목이 ‘매입임대’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지방정부(공사)가 기존 다가구주택이나 신축 주택을 사들여 저렴하게 임대하는 사업이다. 약 3조797억원(33.6%)이 삭감됐다. LH나 지방공사가 전세계약을 체결해 재임대해주는 ‘전세임대’ 예산도 올해 대비 약 1조208억원(22.5%)이 사라졌다. 두 사업의 삭감액만 4조원이 넘는다.

    지난 8월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에서 일가족이 숨진 채 발견된 지 7일 만인 8월16일, 정부는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을 발표하면서 “도심 신축 매입약정 물량 및 전세임대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불과 3주 뒤 제출한 예산안에서 매입임대와 전세임대 예산을 삭감한 것은 모순 아닐까?

    이에 대해 이중기 국토교통부 주거복지지원과장은 “총량으로 보면 모순 같지만 그렇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매입임대 안에서 기존 주택이 아닌 신축 매입 비중을 늘리겠다는 의미다. 전세임대 역시 (총량을 늘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반지하 등 비정상 거처 거주자에 대한 이주 지원에 전세임대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와 닮은 윤석열식 공공주택 정책

    반지하 참사 이후 서울시는 노후 공공임대주택들을 재정비하고 용적률을 높여서 23만 호를 새로 공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재정비 기간에 기존 거주자들을 어떻게 할지 뚜렷한 계획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반지하 거주자가 이주할 경우 월세 20만원을 2년간 지원하는 바우처 정책도 발표했지만, 서울 내에서 이사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액수다.

    국토부는 반지하 거주자의 이주를 위해 5000만원을 무이자 융자하기로 했으나 대상은 5000가구에 그친다. 매입임대나 전세임대는 도심에 당장 대규모 공공임대주택 단지를 짓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하 거주자가 빠르게 이사하도록 도울 수 있다.

    국토교통부의 주택 공급 계획을 보면, 매입임대는 2022년 5만3045호 신규 공급하려던 것을 2023년에는 3만5670호만 새로 공급한다. 전세임대도 4만1500호에서 3만 호로 줄어든다.

    매입·전세임대뿐 아니라 건설임대 예산도 줄었다. 영구임대·국민임대·행복주택 등 정권에 따라 복잡하게 나뉘어 있던 기존 임대주택을 문재인 정부 때 ‘통합공공임대’로 합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영구임대·국민임대·행복주택 신규 물량이 없어지면서 관련 예산이 약 1조7247억원 줄었다. 반면 통합공공임대 예산은 겨우 4373억원 늘었을 뿐이다. 통합공공임대 신규 공급은 2022년 7만1155호에서 2023년 3만5171호로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건설임대 예산은 총 1조4029억원 정도가 줄어들었다. 노후 공공임대주택 그린 리모델링 예산도 약 2760억원(57.4%) 삭감됐다.

     

    2009년 10월20일 보금자리주택 특별공급 사전예약이 진행된 서울 등촌동 KBS88체육관에서 시민들이 현장 접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듯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전년 대비 4분의 1 넘게 줄인 윤석열 정부가 3배 넘게 돈을 쓰겠다는 사업이 있다. 바로 약 1조793억원 증액한 공공분양이다. 16%가량 증가한 주택구입·전세자금 융자지원 예산(약 1조5270억원)을 제외하면 가장 많이 예산을 늘린 사업이다. 그런데 공공분양이 정확히 뭘까?

    “공공분양의 ‘원조’는 명확하지 않다. 1970년대 후반 분양가 규제가 도입되면서 민간보다 싸게 분양하되 일정 기간 팔지 못하도록 제한한 아파트들을 ‘공공분양’이라 부른 것 같다. 당시에는 꼭 LH 같은 공공이 지은 집만을 뜻한 건 아니고 공적자금이 들어간 아파트를 뜻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가 공공분양과 공공임대를 통틀어 ‘보금자리주택’으로 브랜드화하기 시작했다.

    임대와 분양을 가르지 말자는 게 이명박 정부의 모토였다.” 진미윤 LH토지주택연구원 정책지원TF 단장이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첫해인 2008년 9월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도심공급 활성화 및 보금자리주택 건설방안’을 발표한다.

    향후 10년간 보금자리주택을 150만 호 공급하되 그중 70만 호는 ‘공공분양’으로 한다고 했다. 이는 기존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다. 전임 노무현 정부는 2007년부터 10년간 국민임대 100만 호를 포함해 장기 ‘임대’주택 150만 호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중 절반 가까이가 ‘분양’으로 돌려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종전의 “임대주택 위주 공급”에서 벗어나 “자가 보유 촉진과 임대주택 공급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의 임대주택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 해당 문건에 나온다. “‘임대=저소득층 주거’라는 인식으로 계층 간 주거분리, 단지 슬럼화 등의 부작용 발생.”

    2009∼2012년 ‘공공주택’이라 호명된 보금자리주택으로 총 53만8000호가 공급되었다. 이 중에서 임대는 28만9000호에 그쳤고, 24만9000호가 분양이었다. 분양이란 토지나 건물을 나누어 파는 것을 뜻한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분양은 LH가 수도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서 시세보다 저렴하게 파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노무현 정부 말인 2007년 1조3000억원이던 공공분양 예산은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인 2012년에는 4조7868억원까지 증액됐다.

    누군가에게는 ‘로또 당첨’이지만

    문제는 공공분양의 이익이 누구에게 얼마나 돌아갔는지다. 1차 보금자리 지구로 선정된 서울 강남·서초지구는 분양가가 주변 시세의 절반이어서 ‘반값 아파트’라 불렸다. 반값을 주고 입주한 주민들은 6년간 이 주택을 팔지 못하게 돼 있었다(전매제한). 공공이 돈을 들여 싸게 공급한 주택을 곧바로 팔아 이익을 남기지 못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전매제한이 풀리자 별수 없었다. 강남 세곡동 LH푸르지오 전용면적 59㎡(약 17평)의 2011년 분양가는 2억2000만원이었으나 전매제한이 풀린 직후인 2015년에는 6억5000만원으로 세 배 가격에 거래됐다. 최근 시세는 15억원이 넘는다.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은 ‘공공분양의 딜레마’를 이렇게 설명한다. “공공이 (돈을) 너무 많이 남기면 입주자 부담이 커진다. 그렇다고 너무 안 남기면 입주자가 시세차익을 다 가져간다. 지금까지의 공공분양은 ‘내 집 마련을 시켜준다’에서 그칠 뿐, 다른 나라처럼 분양한 집을 공공에 다시 되팔아야 한다는 ‘환매’ 조건이 없었다.

    아무리 처음엔 무주택자를 모집했어도 일단 집이 팔려서 ‘손바뀜’이 일어나면 다주택자에게 가는 것을 통제하기 어렵다. 첫 번째 매수자만 운 좋게 ‘로또’를 누리게 할 게 아니라, 다음 사람도 계속해서 시세보다 저렴한 주택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공공분양에 ‘환매 조건’, 즉 이주할 경우 공공에 되팔겠다는 조건을 붙여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분양은 민간 건설사들로부터 시장개입이라며 반발을 불렀다. 보금자리주택 대기 행렬이 전세난을 부추겼다는 평가에서부터 집값 안정의 일등 공신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부동산 침체기에 집권한 박근혜 정부는 공공분양을 연 2만 호 수준으로 축소하고 대신 ‘행복주택’이라는 이름의 공공임대주택을 늘렸다.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8년부터 올해 2022년까지 5년간 공공분양은 14만700호 공급됐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부터 5년간, 수도권 36만 호를 포함해 공공분양을 50만 호 늘릴 계획이다.

     

    8월9일 윤석열 대통령이 폭우에 따른 침수로 3명이 사망한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을 방문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공공분양은 딜레마를 해결했을까? 세 가지 유형 중 ‘나눔형(25만 호)’은 어느 정도 그런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시세의 70% 이하에 분양하되, 의무거주 기간 5년 뒤 공공에 되팔 경우 매각 시세차익의 30%를 공공이 갖고 70%는 분양받는 사람이 갖는 식이다. 하지만 근본 해법이라 보긴 어렵다. 다음에 들어올 입주자도 저렴하게 들어온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시세의 70~80%를 보증금과 월세로 내며 6년 살아본 뒤 분양 여부를 선택하는 ‘선택형(10만 호)’, 시세 80% 수준에 분양하는 ‘일반형(15만 호)’도 이런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공공분양의 또 한 가지 문제는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이들이 혜택을 받는 정책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시세 6억원짜리 ‘나눔형’ 공공분양주택을 4억2000만원을 내고 분양받는 사례를 제시했다. 목돈 8400만원을 내고 3억3600만원은 대출받는다.

    금리 1.9%를 적용받더라도 월 100만원 안팎을 갚을 수 있어야 한다. 윤 대통령 공약인 청년 원가주택 등에서 언급하는 청년은 1인 가구 월평균 소득의 140%(월 450만원) 이하를 버는 사람이다. 정부는 빚 갚을 능력을 보는 지표인 총부채상환비율(DSR)을 따지지 않겠다지만 시중은행이 쉽게 돈을 빌려주는 시대는 아니다.

    공공분양 정책의 대상자는 예나 지금이나 사실상 ‘어느 정도의 자금 조달 능력이 있는’ 무주택 서민이다.그러나 이번에 가장 많은 예산이 삭감된 매입임대의 수혜자는 기초생활수급자, 쪽방 거주자 등 도심 내 주거 취약계층이다.

    전세임대나 통합공공임대 대상 역시 한부모 가정, 장애인 등 저소득층이다. 같은 청년·신혼부부이더라도 소득이 더 낮은 사람들이다. 윤석열 정부는 공공분양의 ‘무주택 서민’과 공공임대주택의 ‘저소득층’이 마치 호환 가능한 개념인 양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저소득층도 내 집 마련 수요가 있으니 공공분양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공공임대주택 신규 지원 물량을 올해 17만592호에서 내년 10만4927호로 6만5665호(38.5%) 줄이고, 공공분양 물량을 7023호에서 6만3139호로 5만6116호(799%) 늘리려는 이유다. 장기임대 150만 호라는 노무현 정부의 계획을 이명박 정부가 공공분양 70만 호, 공공임대 80만 호로 쪼갰던 것과 비슷하다.

    11월22일 더불어민주당은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 저지를 위한 간담회를 열었다.

    ⓒ시사IN 이명익

    주거 빈곤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한국 사회에서 절대빈곤을 둘러싼 논의가 점점 사라진다고 느낀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의 말이다. “1989년 도입된 영구임대는 소득 하위 10%가 대상이었는데, 1998년 국민임대가 하위 40%로 기준을 높였고, 2013년 행복주택이 대학생·신혼부부·사회 초년생에 주목했다.

    최근 출범한 통합공공임대는 국민 가구소득의 중간값을 뜻하는 지표인 ‘기준 중위소득’의 150%까지 대상이 된다. 거의 중산층까지 포괄하게 된 거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아예 소득·자산·연령을 따지지 않고 무주택자에게 기본주택 100만 호를 주겠다고 공약했다.

    우리는 아직 주거 빈곤을 해소한 상황이 아닌데, 공공택지나 주택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중산층에까지 넓히고 청년 등 연령 기준을 추가로 도입하는 게 맞는지 고민이 된다. 일련의 공공임대주택 정책 변화 속에서 저소득층 혹은 절대빈곤에 처한 이들에게 할당되어야 할 주택 물량들이 계속 축소되어왔다.”

    지난해 정부는 전체 주택에서 10년 이상 장기 공공임대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재고율)이 8%로 OECD 평균을 달성했다며 보도자료를 냈다. 당시 정부는 10년 이상 장기임대주택 170만 호라고 했는데, 이 중에서 5년이나 10년이 지나면 분양으로 전환되는 임대주택 또는 전세임대주택 등을 제외한 진정한 의미의 장기임대주택 수는 119만 호(5.5%)로 뚝 떨어진다.

    그런데 숙박시설, 판잣집, 비닐하우스 등 주택이 아닌 거처에서 지내는 인구의 수는 해마다 늘어 2020년 46만 가구가 됐다. 서울에서만 20만 가구가 반지하에 산다(〈그림 2〉 참조).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전국 임대주택 대기자 수는 총 7만7928명이다. 홍정훈 연구원의 말처럼, 우리가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9월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예산은 큰 변화가 없다”라고 말했다. 서민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특권이 없는 일반 사람’과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 윤석열 예산안은 어느 쪽일까. 전자를 위하느라 후자를 내쳤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

    최경호 소장은 “LH는 공공임대에서 나는 적자를 메우려 분양과 택지개발에 의존한다. 군사작전 하듯 신도시를 개발하고 투기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국가가 재원을 책임지지 않고 공기업에 떠넘겨서 생기는 일이다. 사실 연기금을 공공임대주택 예산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정부는 내 집 마련 수요가 높다고 설문조사를 인용하는데, 건물주가 꿈이라고 해서 모두를 건물주로 만들 수는 없다. (분양 등) 시세차익에 기대는 구조를 바꿔야, 소수만 로또에 당첨되고 대다수는 주거 불안에 시달리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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