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AI로 재현하는 게 훨씬 싸다...몸값 비싼 올드 스타 제거하라”
    문화 광장 2023. 11. 26. 11:02

    “AI로 재현하는 게 훨씬 싸다...몸값 비싼 올드 스타 제거하라”

    [아무튼, 주말]

    [김동식의 기이한 이야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김동식 소설가

    입력 2023.11.25. 03:00업데이트 2023.11.25. 19:02

    고요한 새벽의 침실. 복면을 쓴 침입자가 침대 위 노인에게 총구를 겨눴다.

    “브루스, 난 당신의 오랜 팬이오. 그게 문제지. 난 원래 망설이는 사람이 아니오. 완벽한 프로지. 이 위험한 일을 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으니, 이 바닥에서는 나도 당신처럼 전설이라고 봐도 될 거요.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시오? ‘스타 킬러’요. 물론 앞에 두 글자가 더 붙지. ‘올드 스타 킬러’라고. 난 당신같이 늙은 유명인들을 수없이 처리했소.”

    노인은 그 유명인들이 누군지도 궁금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궁금증이 일었다. “누가 날 죽이라고 한 겁니까? 내가 살면서 무슨 원한을 산 겁니까?” “첩보 영화도 많이 찍은 양반이 무슨 그리 순진한 소리를 하시오? 원한은 무슨, 그냥 돈 때문이지.” “돈이라면… 설마 아들놈이?” “허 참, 당신이 모를 거란 생각은 못 했는데. 이게 다 AI 때문 아니오, AI.”

    일러스트=한상엽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노인 모습에 복면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브루스, 당신은 화면에서만 순수한 게 아니라 실제로도 순수했구려. ‘심슨법’***이란 말을 들어도 감이 안 오시오?” “심슨법? 그게 무슨…?” “시간을 끌려는 수작인지 모르겠지만, 차근차근 설명해주겠소. 5년 전쯤 애니메이션 ‘심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나오?

    주인공 캐릭터의 성우가 바뀌었지. ‘AI 성우’로 말이오. 기업에서는 터무니없이 올라간 성우의 몸값을 또 갱신하느니 그냥 AI 기술로 만든 성우를 쓰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요. 안 그래도 AI 저작권 문제로 혼란이던 당시에 엄청난 도덕적 저항이 일어났고, 결국 국제적인 법이 생기지 않았소. 예술가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 심슨법 말이오.”

    “그건 아는데….” “자, 그럼 내가 왜 올드 스타 킬러로 불리는지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지. 심슨법 예외 조항 때문이오. 성우가 살아있을 때는 AI 성우를 사용하는 게 불법이지만, 성우가 사망한 뒤에는 가능하지 않소? 심슨법은 ‘살아있는’ 인간을 대체하는 것만 불법으로 판단하니까.” “그래서, 설마?”

    “기업 처지에서 보면 말이오. 유명 스타들의 전성기 시절 AI로 작품을 만들면 돈이 된단 말이오. 그런데 유명인이 살아있으면 ‘심슨법’ 때문에 대체할 수가 없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늙은 유명인들의 돌연사가 늘어나고 있다는 걸 누군가는 이제 눈치챌 때가 됐는데 말이지.”

    노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머릿속에 동시대를 함께했던 몇몇 동료 얼굴이 떠올랐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친구들 말이다. 복면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난 프로답게 모든 의뢰를 다 처리했소. 그런데 문제는 내가 당신을 너무 좋아한다는 거요, 브루스. 그거 아시오? 어린 시절부터 당신은 내 영웅이었소.

    마약중독자 아버지에게 맞으며 자라던 내 유년 시절 유일한 탈출구가 당신의 영화였지. 안타깝게도 난 당신 같은 영웅이 되진 못했지만, 어쨌든 똑같이 총을 쓰는 직업을 가지게 되긴 했소. 그러니 당신이 내 인생에 끼친 영향을 무시할 수가 없지. 고민이오. 당신을 처리해야 하는가, 올드 스타 킬러 명성에 유일한 오점을 남겨야만 하는가.”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8)의 한 장면.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은 킬러를 연기해 미국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노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복면은 고민하는 듯 잠깐 총구를 거뒀다가, 다시 들이밀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당신의 새 영화를 보고 싶소. 당신이 죽으면 당신의 전성기 시절 AI가 당신 대신 영화를 찍게 되겠지. 평생 못 볼 거로 생각했던 시리즈의 후속작도 나올 테고. 그건 솔직히 정말 보고 싶소. 아마 당신의 팬 중 많은 이가 나와 같을 거요.

    은퇴한 당신이 시시한 TV쇼에서 농담거리로 소비되는 걸 보는 게 무척 슬펐거든.” 노인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때 침실 밖에서 소란스러운 인기척이 들려오고, 노인의 고개가 소리를 쫓아 돌아갔다. 복면은 곧바로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아, 기대는 마시오. 당신을 구출할 사람이 아니라 내 제자니까. 당신의 죽음은 강도 살인으로 위장될 예정이라 말이오. 값비싼 물건은 내가 챙겨 잘 소장하겠소. 음… 그걸 고려해도 역시 일은 일대로 처리하는 게 맞겠군.” 노인의 표정에 절망이 떠올랐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노인은 ‘차라리’란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팬들이 전성기 시절의 내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면, 배우로서 소임을 다하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내가 죽어서 내 AI가 훌륭한 작품들을 찍어주기를 바랍니다.”

    노인이 담담히 말하자, 복면은 침묵했다. 그러다 끝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총구를 거두었다.

    “역시 안 되겠소. 당신은 내 영웅이야. 포기하겠소. 이 일로 은퇴해야 하게 될지도 모르겠군.” 노인이 복면의 말에 크게 안도하려던 순간, 두 눈을 부릅떴다. ‘피슉’ 소리와 함께 발사된 총알이 복면의 머리를 관통한 것이다. 쓰러지는 복면의 등 뒤로 젊은 청년이 나타났다. “이 바닥에서 명성이 얼마나 중요한데 봐준다는 헛소리를? 참 나.”

    청년은 노인마저 총알로 잠재운 뒤 휴대폰으로 노인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어딘가로 전송한 청년은 휴대폰을 켜 예전부터 준비해둔 앱을 실험해봤다. 이 업계에서 전설적인 킬러인 ‘올드 스타 킬러’를 대체할 음성 AI를 말이다. “아아, 나는 올드 스타 킬러요. 브루스는 처리했소. 보수는 늘 보내던 대로 주시오.”

    ***‘심슨법’은 픽션을 위해 지어낸 허구입니다.

    미국 할리우드 배우 브루스 윌리스 /뉴시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