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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제기의 영화로운 /영화 '괴인'(2023)
    문화 광장 2023. 11. 20. 17:15

    라제기의 영화로운 /영화 '괴인'(2023)

     



    한국일보의 영화전문기자. 문화부장, 에디터를 거쳐 영화라는 우물을 깊고 넓게 파는 중이다. 홍콩배우 임달화를 닮은 외모를 발판으로 최근 클럽하우스에 ‘다롸몰’을 열어 영화로운 이들과 접선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sooji2님. 이번 주 잘 보내셨나요. 어느덧 주말이 눈앞입니다. 주말 짬내서 영화나 드라마 한 편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왕이면 세상사를 좀 더 넓은 눈으로 보게 해주거나 사회 흐름을 콕 집어주는 작품 말이에요. ‘라제기의 영화로운’은 의미 있는 영화나 드라마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냥 잠깐 쓱 스쳐 지나가는데, 이상하더라고”
    영화 ‘괴인’ 속 기홍(박기홍)
    모범답안 같은 사람은 없다?!😅

    영화 '괴인'(2023)
    “저 사람이 저렇게 따스한 면이 있었나.” 우리는 주변인에게 새삼스러운 면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늘 미소 짓는 듯하던 사람이 급작스레 화를 내는 경우를 보거나 무섭게 생긴 얼굴과 달리 배려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기도 합니다.
    살다 보면 절대 선인도, 절대 악인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특정인을 좋다, 나쁘다 식으로 쉽게 규정짓고 범주화하고는 합니다.

    이번 주는 극장에서 상영 중인 독립영화 ‘괴인’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독립영화라면 딱딱하거나 투박하게 사회문제를 파고든다는 생각을 갖기 마련입니다. 완강히 부정할 수 없는 독립영화의 특징이나 이 영화는 결이 많이 다릅니다. 딱히 사회의 어둠을 들여다보는 영화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별스런 사건을 소재로 하지 않으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안깁니다. 별일 아닌 듯한 일을 들여다보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인간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다시 한번 되짚게 하는 괴작이라고 할까요(사진 제공: 다림질스튜디오).
    👉초년 목수에게 생긴 일
    주인공 기홍(박기홍)은 목수입니다. 일을 시작한지 이제 2년 정도 지났으나 독립해서 홀로 일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그는 언뜻 보면 호감형 인물이라 할 수 없습니다. 덥수룩한 수염부터 경계심을 일으킵니다.
    상대가 나이가 많건 적건 습관적으로 말을 쉽게 놓습니다.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노인이 임금을 빨리 달라하자 “돈 돈 돈 그만 하라”며 버럭 화를 내기도 합니다. 옆집 창문으로 남녀가 야릇한 행동을 할 듯한 모습이 보이자 슬쩍 훔쳐보기도 하는 인물입니다.
    기홍은 월급쟁이로 살다 목수로 전향한 듯합니다. 그는 언제까지 남 밑에서 일할 거냐며 친구에게 호기롭게 묻습니다. 자신은 하루 벌이가 40만 원 정도 된다고 자랑하기도 합니다. 허세 넘치는 기홍이 매번 자신만만한 건 아닙니다.
    그는 집에 돌아가면 은근히 기가 죽습니다. 기홍은 수도권 외곽 저택에 세 들어 삽니다. 전남 밤 술을 진탕 마셨는데도 집주인 정환(안주민)이 “저랑 낮술 한 잔 어떨까요”라고 물으면 쉬 거부를 못하는 식입니다.
    기홍은 어느 날 자신의 승합차 지붕이 찌그러진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얼마 전 공사를 끝낸 피아노학원 앞에 주차를 했을 때 ‘범행’이 발생한 듯합니다. 지붕 위로 뛰어내린 ‘범인’의 모습이 흐릿하게 블랙박스 카메라에 포착돼 있기도 합니다.
    한량처럼 사는 정환이 심심하던 참에 흥미로운 일을 발견한 듯 기홍을 부추겨 범인 잡기에 나섭니다. 기홍은 예상치 못했던 일에 빨려 들어가고, 생각지도 않던 인연을 맺게 됩니다.



    👉허세와 비굴, 연민과 도의
    ‘괴인’에 나오는 인물들은 뭐라 정의 내릴 수 없습니다. 일단 기홍은 다면성을 가장 많이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는 허세 가득한 인물입니다. 그는 친구에게 “네가 노가대를 몰라서 하는 말인데”라고 잘난 척하기 일쑤이고 칸트 관련 책을 야외 테이블에 놓아두고 지내기도 합니다.
    오랜 만에 만난 가족에게는 퉁명스럽게 대하면서도 의외로 속정이 깊기도 합니다. 그는 정환 가족과 돈 앞에서는 비굴합니다. 정환이 무언가를 해보자고 하면 거부 한번 제대로 못합니다. 정환의 아내 현정(전길)이 친구가 카페를 차리고 싶어한다는 말을 하자 공사를 따내기 위해 허리를 낮춰 공을 들이기도 합니다.
    집주인 정환은 또 어떤가요. 그는 일이 없어 집에서 쉬는 날이 많습니다. 주변인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 좋은 사람인 듯하나 나쁜 면이 있기도 합니다. 기홍이 싫은 기색을 내비쳐도 뭔가를 함께 하자고 자꾸 종용합니다. 밤에 기홍의 방을 불쑥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는 합니다. 집주인의 ‘갑질’이라 할만한 행동입니다.
    현정은 무심한 듯 따스한 인물입니다. 그는 기홍에게 잘 해주는 듯하면서도 가끔은 냉정합니다. 현정이 기홍에게 세를 준 이유가 지극히 이기적이기도 합니다. 기홍의 봉고차를 훼손한 하나(이기쁨)도 아리송한 인물입니다. 온몸에 문신을 하고 불량청소년처럼 보이는 그는 예상 밖 행동을 해 극 전개에 영향을 줍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현실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나 어떤 때는 잘난 척하고 또 다른 상황에서는 비굴하게 굽니다. 어떤 이 앞에서는 공정과 정의를 외치면서도, 또 다른 이를 만나면 현실의 불의를 비겁하게 받아들입니다.
    인간은 모순적입니다. 상대방과 상황에 따라 행동이 바뀌고는 하니까요. 시장에서 채소거리를 사며 몇 백 원을 흥정하는 사람이 커피를 마실 때 가격을 크게 개의치 않는 것처럼요. 요컨대 모범답안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는 괴인
    영화 제목은 ‘괴인’인데 딱히 괴이한 인물이라 점 찍어 말할 수 있는 인물은 없습니다. 독특한 외모에 조금 괴팍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기홍을 괴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기홍의 차를 훼손 시키고 사라져 기홍과 정환의 삶에 조그만 파문을 일으킨 하나가 괴인일까요. “사랑하지는 않으나 좋은 아내는 될 수 있을 듯해” 정환과 결혼한 현정을 괴인이라 칭할 수 있을까요.
    등장인물들은 객관적으로 괴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때로는 괴이한 사람입니다. 피아노학원 원장은 자신에게 슬쩍 치근덕거리는 메시지를 보낸 기홍을 괴인이라 생각할 수 있고, 기홍은 불량하게만 보였으나 도리를 알고 자신만의 원칙이 있는 하나를 괴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환은 사랑하지 않는다면서도 결혼하고, 자신 몰래 기홍과 밤새 술 마시기 위해 외출한 아내 현정을 괴인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상황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괴인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싶은 듯합니다.
    영화 속 정환과 현정, 기홍이 사는 집은 구조를 눈여겨 볼만 합니다. 가운데를 중심으로 집이 두 채처럼 나눠져 있습니다. 집 양쪽은 내부 이층계단으로 왕래가 가능합니다. 양쪽은 분리돼 있으면서도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기홍은 정환네를 찾을 때마다 현관을 이용해 왕래합니다. 정환과 현정은 이층계단으로 기홍을 만나러 가고 기홍에게는 편하게 이층계단으로 오가라고 강조합니다. 집주인이 허물 없이 지내자고 하지만 기홍은 최소한의 사생활이 지켜지길 바랍니다.
    인간관계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친하다는 생각에 지인에게 밤늦게 전화할 수 있다 생각하나, 또 누군가는 친한 사람의 그런 행태를 부담스러워합니다. 각자의 가치관과 성격을 바탕으로 상대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면 우리는 “이상한 사람이네”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영화는 집 구조만으로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합니다.


    👉올해 몇 손가락 안에 들 독립영화
    '괴인'은 사람들이 살면서 겪게 되는 일상적인 일들을 들여다보며 묘한 긴장감을 빚어냅니다. 영화처럼 우리는 극적인 상황은 아니어도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불편함과 경계심, 호감 등으로 마음이 출렁이기 마련입니다.
    기홍과 현정이 어느 카페에서 미술품을 관람하는 장면은 상징적입니다. 얇은 유리 같은 판이 수직으로 세워져 있고 그 위에 커다란 돌이 불안하게 올려져 있는 미술품입니다. 돌은 극단적으로 한쪽에 몰려 있어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입니다. 미술품은 마치 끊길 듯 끓기지 않는, 우리네 인간관계를 비유하는 듯합니다. 우리는 주변인을 “이상하다”고 평가하면서도 그들과 교류하며 삶을 일궈나가기 마련이니까요.
    영화의 제작과정이 흥미롭습니다. 등장인물 9할이 비전문배우입니다. 주인공 기홍을 연기한 박기홍은 실제 목수로 이 영화를 연출한 이정홍 감독의 30년지기입니다. 정환 역을 맡은 안주민의 실제 직업은 요리사입니다. 현정을 연기한 전길은 아이가 있는 평범한 엄마이고, 하나 역의 이기쁨 역시 비전문배우입니다.
    이 감독은 인터넷커뮤니티와 대단지 아파트들에 오디션을 공지한 후 이들을 캐스팅했다고 합니다. ‘괴인’은 이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입니다. 영화에 관심이 크신 분들이라면 ‘이정홍’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두면 좋을 듯합니다.
    ✋벌써 금요일입니다. 차가운 날씨가 한 해의 시간을 재촉하는 듯한 요즘입니다. 아무래도 한국은 공전주기가 빠른 듯합니다. 이번 주도 별 일 없이 잘 지내셨는지요. 이번 주 '영화로운'은 어떠셨나요. 지난 주 많은 의견 주셨는데, 웨스 앤더슨 감독 영화를 다뤄 달라는 말씀이 제게는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저도 앤더슨 감독 영화를 좋아해서요. 의견 염두에 두고 어떤 식으로 '영화로운'에 반영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겠습니다. 겨울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아니, 벌써 겨울인가요.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고 행복한 주말 보내십시오.🤗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 OTT 콘텐츠 2편씩 추천해드립니다.


    ‘라제기의 영화로운’은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에 보내드립니다.
    영화로운 주말 보내세요 😄

     

    한국일보 이메일서비스에서 발췌 url없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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