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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 연탄 공장 줄도산에 치솟는 연탄 가격…쪽방촌 월동준비 ‘비상’
    지금 이곳에선 2023. 10. 19. 10:08

    [르포] 연탄 공장 줄도산에 치솟는 연탄 가격…쪽방촌 월동준비 ‘비상’

    성북구 정릉동 달동네서 연탄 직접 운반해보니

    30명서 12가구, 2400장 배달…동절기 한 달 치 분량

    연탄 후원 30% 이상 ‘뚝’…공장도 줄며 가격도 올라

    코로나 이후 늘어난 봉사자에 위안

     
    입력 2023.10.19 06:00

    18일 오전 서울 성북구 정릉동 달동네에서 진행된 연탄 배달 봉사활동에서 연탄을 옮기는 봉사자. /김양혁 기자
    18일 오전 9시 50분 서울 성북구 정릉동 달동네. 좁고 가파른 언덕길 위로 허름한 집들이 옹기종기 늘어선 그곳에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로는 보이지 않는 젊은 남녀 약 30명이 모여 있었다. 엄마 손을 잡고 온 앳된 얼굴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 사는 어르신들의 월동 준비를 위해 온 기부단체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날 배달할 연탄은 2400장. 12가구에 200장씩 전달한다. 동절기 200장이면 한 달 치 분량이라고 한다. 달동네 곳곳에는 제 역할을 다한 연탄들이 비닐봉지에 싸여 나와 있었다. 최근 최저기온이 10도 안팎으로 뚝 떨어진 영향이다. 한 어르신은 연탄 배달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우리 집부터 좀 넣어달라”고 했다.

    18일 오전 서울 성북구 정릉동 달동네 곳곳에는 이미 제 몫을 다 한 연탄들이 나와 있다. /김양혁 기자
    2400장의 연탄은 골목 주요 거점 세 곳에 나눠 쌓여 있었다. 연탄은행 직원은 간이 테이블 위에 놓인 빨간색 조끼와 초록색 조끼 중 초록색 조끼를 입으라고 했다. 조끼 색깔로 조를 나눠 최적의 동선으로 배달하기 위해서다.
    조끼를 입고 곧바로 지게를 메고 배달할 연탄을 배분받았다. 4장까지만 해도 크게 무리 없겠다 싶었는데, 점차 어깨가 짓눌렸다. “총 8장 올렸습니다”며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연탄 1장은 3.65㎏. 총 29.2㎏를 메고 발길을 옮겼다.

    18일 오전 서울 성북구 정릉동 달동네에서 진행된 연탄 배달 봉사활동에서 어르신 집에 연탄을 쌓고 있는 모습.
    첫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2분가량을 걷다가 계단 20~30개만 올라가니 목적지였다. 이곳에서 13년째 살고 있다는 어르신은 “집까지 연탄을 가져다주니 고맙다”고 했다. 그는 가스보일러도 써보려 했는데 고장이 난 뒤 수리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다시 연탄을 쓰고 있다고 했다. 어르신 집은 4차례 왕복하자 끝이 났다.
     
     

    18일 오전 서울 성북구 정릉동 달동네에서 진행된 연탄 배달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김양혁 기자
    어느새 땀이 온몸을 적셨다. 선선한 날씨에 입고 왔던 웃옷을 던지고 가벼운 복장으로 재정비했다. 다음 목적지를 향하기 위해 다시 지게를 멨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땀방울을 흘리다 보니 이날 처음 본 자원봉사자들과 ‘전우애’가 생겼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며 숨이 턱 끝까지 찼지만, “파이팅”이라는 목소리가 발을 움직이게 했다.
    연탄 8장을 메고 쩔쩔매고 있는 것과 달리, 12장을 올린 채 뚜벅뚜벅 앞서가는 자원봉사자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배달에 속도가 붙자 키만큼 쌓여있던 연탄들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 한편으로 안도감이 들던 사이 연탄은행 직원이 6명을 차출했고, 여기에 포함됐다. 직원은 “좀 힘들 거에요. 먼저 미안해요”라고 먼저 사과했다.

    18일 오전 연탄 배달 봉사활동이 진행된 서울 성북구 정릉동 달동네. /김양혁 기자
    개의치 않고 연탄을 싣고 다시 움직였다. 눈앞에 마주한 건 끝이 보이질 않는 계단. 손 한 뼘이 넘는 계단 60개를 올라가 좁은 골목길을 누벼 마침내 목적지에 맞닿았다.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왕복으로 지쳐가던 찰나. “그만하셔도 됩니다”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이크를 잡은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는 “연탄 1장은 850원인데 배달비까지하면 1000원”이라며 “오늘 여러분 덕분에 1장당 150원 정도를 아낄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고 말했다.
    연탄은행이 올해 10월부터 내년 3월까지 목표로 하는 연탄 배달량은 총 300만장이다. 그러나 경기 불황에 연탄 후원이 ‘뚝’ 끊기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16만장이었는데, 올해 11만장으로 30% 이상 줄었다.

    18일 오전 서울 성북구 정릉동 달동네에서 진행된 연탄 배달 봉사활동에 쓰일 연탄들이 쌓여 있다. /김양혁 기자
    여기에 최근 연탄공장들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연탄 가격까지 치솟고 있다. 2018년 45곳이었던 전국 연탄공장은 올해 9월 기준 30곳으로 줄었다. 30곳 가운데 실제 가동하는 곳은 21곳에 그친다. 연탄 가격은 1장당 639원으로 수년째 동결됐지만, 운반비, 배달료가 더해지며 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이날 배달 장소처럼 차량이 오르락내리락하기 어려운 곳은 더 비싸다.
    허 대표는 “서울 내 1800가구가 연탄을 쓰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2년 전보다 200가구 늘었다”며 “후원이 절대적인데 올해 후원이 줄어 연탄공장에서 외상으로 받아 오고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18일 오전 서울 성북구 정릉동 달동네에서 진행된 연탄 배달을 위해 연탄 배분을 기다리는 봉사자들. /김양혁 기자
    그나마 늘어나는 봉사자를 위안으로 삼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난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봉사자 발길이 끊어졌지만, 지난해 250명을 기록한 뒤 올해는 현재까지 258명이다.
    이날 배달에 참가한 봉사자들은 연탄 구매부터 배송까지 책임졌다. 1인당 연탄 구매 비용으로 1만7000원을 내고 봉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날 직장에 연차를 내고 봉사에 참여했다는 30대 남성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봉사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모집 5분 만에 마감됐다”며 “이번에 겨우 참여했는데 즐거웠다”고 했다.
    18일 오전 서울 성북구 정릉동 달동네에서 진행된 연탄 배달 봉사활동 이후 받은 엽서와 키링. /김양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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