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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전후 국가 재난 대응 체계 어떻게 작동했나지금 이곳에선 2022. 11. 23. 17:27
이태원 참사 전후 국가 재난 대응 체계 어떻게 작동했나
중앙정부와 지자체, 경찰과 소방이 공개한 자료를 종합해 이태원 참사 전후
재난 대응 체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짚어봤다.
매뉴얼은 작동하지 않았고 컨트롤타워는 불분명했다.
기자명문상현 기자 입력 2022.11.21 06:26793호
10월30일 새벽 사상자가 몰린 순천향대서울병원 앞에서 구급 차량들이 사상자 분산 이송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이태원 참사로 드러난 건 국가 재난 대응 시스템의 민낯이다. 참사 예방을 위해 만들어진 매뉴얼은 작동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는 손을 놓고 있었고, 참사 직후 경찰과 소방의 공조는 원활하지 않았다. 재난 대응을 위해 1조5000억원을 들여 구축한 통신 시스템은 195초만 썼다.
대응을 총괄하고 지휘할 컨트롤타워는 불분명했다. 참사 이후 중앙정부와 지자체, 경찰과 소방이 국회와 브리핑에서 공개한 자료를 종합해 이태원 참사 전후 국가 재난 대응 체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짚어봤다.
10월29일 오후 6시34분부터 참사 발생 첫 신고가 접수된 오후 10시15분까지, 이태원 일대에서 인파로 인한 안전사고 위험을 알린 112 신고는 총 11건이다. ‘압사’를 언급한 신고가 6건, 참사가 일어난 골목 인근에서 들어온 신고가 9건이었다. 경찰의 현장 상황 파악이 늦어지면서 관할서인 용산경찰서-서울경찰청-경찰청으로 이어지는 보고 체계도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참사 수습 과정에서 경찰에 화살이 우선적으로 향하고 있는 이유다.
공개된 10월29일 참사 당일 경찰 대응 과정을 되짚어보면, 경찰과 소방·용산구·서울시·행정안전부 등 기관별 높은 ‘칸막이’가 확인된다. 비상 상황에 대한 정보 공유와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시스템 참사의 흔적들이다. 원활하지 못한 공조는 사상자 구조 및 병원 이송에 혼선을 줬다. 참사 이후에는 일부 기관 사이의 책임 떠밀기 또는 진실 공방 수단이 되기도 했다.
국가 재난 대응의 두 축인 경찰과 소방부터 공동대응에 엇박자를 냈다. 먼저 공조 요청을 했던 건 경찰이다. 황장선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은 11월7일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참사 당일 오후 8시33분과 9시에 서울소방본부에 공동대응을 요청했다”라고 밝혔다.
경찰과 소방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관계 기관별 신속한 대응을 위해 마련된 ‘긴급신고 통합시스템’을 통해 공조하고 있다. 112·119 신고를 접수한 뒤 공조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공동대응 요청 긴급 버튼’을 누를 수 있다. 경찰은 이날 현장 경찰관들만으로는 핼러윈 인파를 통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자 소방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은 경찰 업무로 간주하고 종결처리했다. 112에 신고를 접수한 신고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부상자와 상황 파악을 했지만 ‘현장 교통통제 및 질서유지’ 성격으로 판단해 경찰에 맡겼다는 게 소방의 입장이다. 이일 소방청 119대응국장은 앞서의 중대본 브리핑(11월7일)에서 “당시 공동대응 요청을 받고 신고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첫 번째 신고는 현장 교통통제와 질서유지가 필요한 것으로 확인했다. 두 번째 신고는 ‘구급차가 필요하지 않다’고 확인해 경찰에 해당 내용을 전달하고 종결했다”라고 설명했다.
엇박자는 참사 발생 직후에도 이어졌다. 이번엔 소방이 ‘공동대응 요청’ 긴급 버튼을 눌렀다. 서울소방재난본부는 참사 첫 신고(10월29일 오후 10시15분) 3분 뒤인 오후 10시18분부터 경찰에 인력 투입과 현장 통제 등을 요청했다. 당시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인근은 혼잡이 극심했다. 먼저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장비를 들고 도보로 현장까지 이동하고 있었다.
이태원 참사 구조 관계자들의 ‘모바일 상황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자료: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정 전 도착한 재난의료팀은 한 팀뿐
서울소방재난본부는 오후 10시56분 전화로 서울경찰청에 경력 투입을 요청했다. 같은 시각 소방청도 경찰청 상황실에 공동대응 요청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 경찰청이 이태원 참사를 인지한 건 이 시점이다. 이후 소방은 오후 10시59분부터 다음 날 오전 0시17분까지 12차례에 걸쳐 용산경찰서와 경찰청, 서울경찰청 상황실에 공동대응을 요청했다.
경찰기동대가 현장에 처음 도착한 시간은 오후 11시40분께다. 용산서장 단계에서 막혀 있던 경찰 보고 체계가 작동하면서 기동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시사IN〉 제792호 ‘이태원 참사 그날 경찰은 어디를 보고 있었나’ 기사 참조). 사고 발생 1시간25분 만으로, 이미 참사 현장에서 수십 명의 사상자가 구급대원과 시민들의 손에 실려 나오고 있을 때였다.
소방청이 작성한 이태원 참사 당일 ‘사상자 이송 현황’을 보면, 사고 발생 후 처음 출동한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하는 데는 25분이 걸렸다. 현장에서 140m 떨어진 이태원 119안전센터에서 출발한 구급차는 도착까지 13분이 소요됐다. 참사 직후 구급차가 구조한 환자를 태워 병원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25분이었다.
〈시사IN〉이 별도로 기동대가 처음 투입된 오후 11시40분 기준 ‘사상자 이송 현황’을 분석한 결과, 구급차의 현장 투입 시간은 5분으로 단축된 것으로 확인됐다. 병원 이송 시간은 10분 안팎으로 줄었다. 늦은 기동대 투입 시간이 아쉬운 이유다.
재난 대응의 또 다른 핵심인 재난 응급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재난의료팀(DMAT)은 투입부터 지연됐다. 보건복지부가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에 제출한 ‘재난의료팀 출동 현황’ 자료를 보면, 참사 당일 현장에는 총 15개 재난의료지원팀 63명이 출동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자정 전 현장에 도착한 의료지원팀은 1개 팀(오후 11시20분)뿐이었다.
재난의료팀 요청은 행정안전부 재난상황실이 신고를 받고 중앙응급의료센터로 연락하면 각 병원에 의료팀 출동을 요청한다. 참사 당일 행정안전부는 오후 10시48분 소방청의 첫 보고를 받았다. 서울시와 용산구에 대응을 지시한 건 5분 뒤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참사 발생 1시간 5분이 지난 오후 11시20분 상황을 처음 파악했다. 상황 전파가 늦어지면서 출동 요청-현장 투입이 잇따라 지연됐다.
재난의료팀은 재난 현장에서 1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출동한다. 통상 4~5명의 의사·간호사로 구성된다. 첫 의료지원팀이 도착한 시간에는 이미 수십 명의 심정지 환자가 발생한 상황이었다. 4~5명의 의료진이 응급의료 대응을 했다는 얘기다.
현장에 응급의료소가 설치되기 시작한 시각은 오전 0시9분, 제대로 운영된 시각은 오전 1시께였다. 현장응급의료소는 중증도(사망·긴급·응급·비응급)에 따라 환자를 분류하고 병원 이송과 현장 치료 여부를 결정한다. 의료지원팀 투입과 동시에 신속하게 만들어져야 했을 시설이었다.
보건복지부의 ‘재난응급의료 비상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관할 보건소장은 재난 상황에서 현장 응급의료소장을 맡는다. 최재원 용산보건소장이 신속대응반과 함께 현장에 나타난 건 참사 발생 1시간54분이 지난 10월30일 오전 0시9분이었다. 최 보건소장은 10월29일 오후 11시30분 이태원역에 도착했지만, 신분 확인이 안 돼 경찰이 통제한다는 이유로 용산구청으로 돌아갔다. 이후 출입증을 챙겨 신속대응반과 함께 현장으로 향했다.
보건소장이 도착하기 전까지 중앙응급의료센터와 소방, 의료진이 환자 이송을 전담했다. 지휘·통솔자는 늦고, 상황 전파와 현장 통제가 지연되면서 이들 사이에 대한 소통과 정보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사이 참사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순천향대서울병원에 사상자가 몰렸다. 당시 순천향대병원으로 이송된 사상자는 10월30일 오전 2시10분까지 심정지 환자 76명, 응급실에서 치료 중 사망자 3명 등 총 79명이었다.
희생자들은 같은 날인 10월30일 오전 4시48분 119 구급차로 분산 이송될 때까지 병원 영안실 복도에 방치됐다. 당시 사상자 이송과 관련한 혼선은 신현영 의원이 11월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공개한 구조 관계자들의 ‘모바일 상황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재난 상황에서 현장 사망자 규모 파악과 영안실 섭외 등 사망자 관리도 관할 지자체와 보건소장이 맡는다. 그러나 용산구와 용산보건소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김원이·신현영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10월29~30일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상황실 상황일지’와 ‘용산보건소 상황일지’를 보면, 응급의료상황실과 소방 당국은 수차례 용산보건소에 장례식장 현황 파악을 요청했다. 용산보건소 상황일지에 따르면 용산소방서는 10월30일 오전 0시40분, 중앙응급의료센터 상황실은 오전 1시47분 각각 용산보건소에 영안실 및 장례식장 섭외 요청을 했다.
용산보건소는 오전 2시10분께 뒤늦게 ‘임시 안치소 장소 수배’를 시작했다.
오전 2시45분께 마련한 건 장례식장이 아닌 원효로 다목적체육관 임시 영안소였다. 안치실은 아예 찾지 못했다. 오전 4시30분께 뒤늦게 서울·경기 병원 영안실과 장례식장 잔여석을 파악했다. 150여 실이 뒤늦게 섭외됐는데, 이는 용산보건소를 수차례 재촉했던 중앙응급의료센터 상황실이 한 일이었다. 영안실 섭외와 사망자 현황 파악이 늦어지면서, 당시 실종자 가족 대부분은 10월30일 낮까지 희생자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고 발을 굴렀다.
재난 상황에서 혼선을 막고 원활한 소통을 위해 경찰·소방·의료 등 재난 관련 기관이 하나의 통신망으로 소통하는 시스템은 이미 갖춰져 있었다. 전국 단일 통신망으로,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부가 1조5000억원을 들여 만든 ‘재난안전통신망’이다. 이 통신망에 연결된 무전기를 쓰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소방·지자체 직원 등이 동시에 소통하면서 구조 및 사건 수습을 할 수 있다. 현재 전국 19만8000대 무전기가 보급돼 있다.
정태호 민주당 의원이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이태원 참사 당시 ‘재난안전통신망 접속 기관 및 통신·통화 내역’을 보면, 10월29일 밤과 30일 새벽 중앙재난안전상황실과 서울시 재난상황실, 용산구 재난상황실에서 이뤄진 통신 시간은 195초에 불과했다.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는 행안부를 비롯한 40개 기관이, 서울시 재난상황실에는 서울시와 구청 등 40개 기관이 공통 통화 그룹으로 묶여 있다. 용산구 재난상황실 또한 용산구와 서울시 등 22개 기관이 통화 그룹에 참여한다.
재난안전통신망이 처음 활용된 시각은 오후 11시41분이었다. 최초 신고 이후 1시간26분이 지난 시점이다. 재난안전통신망에서 서울소방은 제외된 사실도 확인됐다. 11월4일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이태원 참사 중대본 브리핑에서 “재난안전통신망은 버튼만 누르면 유관기관 간 통화를 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시스템이) 잘 작동이 안 됐다”라고 말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11월8일 국회 예결위에서 “재난 구조라는 면에서 제가 컨트롤타워가 맞다”라고 답했다.
ⓒ연합뉴스
2020년 경찰 핼러윈 대책엔 ‘압사’ 언급
참사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훈련을 거듭하고 지침을 만들어도 참사는 딱 들어맞는 형태로 발생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위기가 참사로 바뀌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고, 유사시 빠른 대처를 위해 매뉴얼을 만들어둔다. 이태원 참사 직후 정부와 지자체, 경찰은 ‘주최자 없는 행사는 관리할 매뉴얼이 없다’고 밝혔다. 매뉴얼이 없어서 안전관리 의무도 없었다는 뜻이다.
부실한 사전 대응과 참사 원인을 제도적 한계로 못 박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주최자 없는 자발적 집단 행사의 안전관리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 참사 발생 닷새 후 11월3일 행정안전부는 ‘다중밀집 인파사고 안전관리 지침’을 제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매뉴얼은 있었다. 2005년 10월 경북 상주 공연장 압사 사고를 계기로 관련 대책이 논의됐다.
같은 해 경찰은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을 만들었고, 2006년에는 ‘혼잡경비 실무 매뉴얼’로 개정했다. 2014년엔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로 수정·보완했다. 2005년 매뉴얼과 2014년 매뉴얼을 비교하면, 안전관리 대상은 민간 주최 행사에서 군중이 모이는 각종 축제로 점차 확대됐다. 인파가 모여 혼잡한 상황이 발생하면 경찰 인력을 배치하고, 안전공간과 통로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침도 포함됐다. 경찰은 이 매뉴얼을 참고해 이태원 핼러윈 기간 자체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용산경찰서는 ‘핼러윈 치안대책’을 세우고 다중 인파 안전사고에 대비했다. 2020년에는 ‘압사’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고 주요 골목에 경찰기동대 배치, 폴리스라인 설치 등을 계획했다. 지난해와 올해 대책에선 제외됐다.
행정 당국도 별도의 매뉴얼을 만들었다. 소방방재청은 2006년 ‘공연·행사장 안전 매뉴얼’을 발간했다. 행정안전부가 이를 보완해 2021년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을 마련했다. ‘모든 축제에 대해 안전관리계획 수립’을 권고 사항으로 명시했다.
매뉴얼보다 더욱 명확해야 할 컨트롤타워는 불분명하다. 11월7일 윤석열 대통령은 “이 재난의 컨트롤타워, 안전의 컨트롤타워는 대통령이 맞다. 모든 국가 위험과 사무의 컨트롤타워는 대통령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다음 날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컨트롤타워는 (행정안전부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고 국정상황실은 대통령의 참모 조직이다. 대한민국의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과 참모가 하루 사이에 결이 다른 말을 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본인이 컨트롤타워라고 밝혔다. 그는 11월8일 국회 예결위에 참석해 “최종 컨트롤타워는… 재난 구조라는 면에서는 제가 컨트롤타워가 맞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는 이태원 참사 당시 대통령보다 늦게 보고를 받았다. 이상민 장관이 본부장인 중대본 회의도 날짜를 넘겨서야 처음 열렸다. 앞서의 112 신고로 현장 상황을 사전에 파악하거나 경찰기동대를 출동시키는 문제, 응급의료팀 배치와 병원 이송 과정에서도 중대본이 총괄 지휘한 흔적은 없다.
참사 당일 재난문자는 서울시가 오후 11시56분에 처음 발송했다. 참사 발생 후 1시간40분이 지난 시점이다. 서울시보다 참사 발생을 더 빨리 인지한 행정안전부는 ‘재난문자 발송 권한’이 있었음에도, 보내지 않았다.
정부는 연내 종합대책 수립을 목표로 ‘범정부 재난안전관리체계 개편 TF’ 운영을 시작했다. TF의 주요 추진 과제는 긴급구조 시스템 개선방안, 재난 상황 보고·통제 체계 개선, 인파 관리 안전대책 등에 따른 신종 재난 대응방안 등이다. TF 단장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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