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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겹 중무장해도 속수무책…골목 노점 11곳 중 9곳 문 닫아 현장

수지222 2025. 2. 6. 19:22

4겹 중무장해도 속수무책…골목 노점 11곳 중 9곳 문 닫아 현장

박고은,고나린,이경미기자

수정 2025-02-05 14:44등록 2025-02-04 17:23

한파가 기승을 부리며 서울의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가까이 떨어진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에서 한 시민이 추위를 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추운 날에는 네 겹은 껴입어야 해요. 찜기에서 나오는 열기로 이렇게 손도 계속 녹이고.”

매서운 한파가 들이닥친 4일 오전 11시께, 그나마 뜨끈한 음식을 내놓던 서울 종로구 동대문역 앞 노점들마저 추위에 움츠러들었다. 8년째 이곳에서 찐 옥수수를 파는 김정자(81)씨가 찜기에 손을 녹이며 말했다.

“새벽 4시 반에 문을 열어도 이렇게 추운 날엔 하루 벌이가 3만원을 못 넘어요. 점심시간이 지나면 문 닫으려고요.” 김씨의 노점상은 컨테이너 형태로 삼면은 막혀 있지만 앞면은 뚫려 냉기가 그대로 스며들었다. 털모자, 조끼, 패딩, 핫팩으로 무장했지만, 손님 발길까지 뚝 끊길 정도의 한파 앞에선 버티기 쉽지 않다. 이 골목 노점 11곳 가운데 9곳은 이날 문을 열지 못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 하루 뒤인 4일, 절기에 어울리지 않는 한파가 전국을 덮쳤다. 이날 서울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2도, 바람마저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다. 최저 기온 영하 10도를 맴도는 한파는 주말까지 이어진다. 거리에서 추위를 견디고 있던 이들은 한겨레에 올해 한파가 한층 야속한 저마다의 사정을 함께 전했다.

 

전국에 한파가 몰아친 4일 오후 인천 강화군 동막해수욕장 앞 갯벌이 얼어붙어 있다. 연합뉴스

배달노동자들은 ‘불경기’가 추위를 한층 격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 주변서 일하는 배달 노동자 백아무개(44)씨는 발열조끼, 패딩 바지, 발 핫팩까지 착용했지만 “칼바람이 너무 세 얼굴이 얼얼할 정도”라고 했다.

백씨는 “불경기로 주문이 많이 줄어든 탓에 밖에서 무한정 콜을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추위 속에 밖에서 기다리고만 있는 게 가장 힘든 일”이라고 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를 중심으로 집회 양상이 격렬해지며, 이를 관리해야 하는 경찰 기동대원들에게도 한파는 한층 고통스럽다.

서울경찰청 기동대 소속 순경 ㄱ씨는 이날도 윤석열 대통령 탄핵재판 5차 변론기일이 열리는 헌법재판소 앞에 나갔다. 그는 “오늘 23시간 철야로 일해야 한다. 손발에 아무 감각이 없을 정도로 춥다”며 “1시간 근무, 2시간 휴식을 하지만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한파까지 겹치니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한파가 들이닥친 4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동대문역 앞에서 김정자(81)씨가 운영하는 옥수수 노점. 고나린 기자

쪽방촌 주민들의 추위도 여전하다. 김형옥 영등포쪽방상담소 소장은 “쪽방촌에는 공용·공중 화장실을 이용하는 주민들도 많은데,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이 추위에 바깥으로 나와야 하니 불편함이 크다”며 “야간에는 ‘밤추위대피소’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공간 제약상 매일 40명씩만 바우처(이용권)를 받아야 이용할 수 있어, 이런 한파에는 이용권이 다 떨어져 못 들어오는 주민도 있다”고 했다. 밤추위대피소는 한파로부터 쪽방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목욕탕 수면실 등을 야간 한파 쉼터로 운영하는 서울시 사업이다.

이날 질병관리청은 올겨울(지난해 12월1일~올해 2월2일) 한랭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운영한 결과 233명의 한랭질환자가 신고됐다고 밝혔다. 질환별로 보면 저체온증이 84.5%로 가장 많았고, 동상이 14.2%였다. 연령별로는 65살 이상이 57.5%로 가장 많았다. 지난 2일까지 집계된 한랭질환자는 지난해(324)명보다 줄었지만, 고비는 한낮에도 영하권의 날씨가 지속하는 이날부터다.

질병청은 한랭질환에 대비해 건강수칙 준수를 당부했다. 심뇌혈관질환자는 매일 실내에서 적절한 강도의 운동을 하는 것이 좋고, 호흡계질환자는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과음도 피해야 한다. 술을 마시면 신체에 열이 올랐다가 체온이 빠르게 떨어지지만, 추위를 인지하지 못해 위험할 수 있다. 2023~2024년 한랭질환 응급실감시체계에 신고된 한랭질환자의 21.3%가 음주 상태였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고나린 기자 me@hani.co.kr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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