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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태성의 북 & 이슈
    문화 광장 2023. 11. 12. 11:50

    조태성의 북 & 이슈


    VOL.10|2023.11.01

    “이 헌신적인 시오니스트 두 사람은
    유대인들이 현지 토착민들 속으로 들어가
    하나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종족적 기원을 공유하고 있기에
    그 바람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옛날 유다 지역 소농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긴 했지만,
    그건 물질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주로 납세를 피하기 위해서였으며
    그런 이유는 전혀 반역적이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농토를 떠나지 않음으로써
    고향 땅에 대한 충성을 지켰다.”
    - 슐로모 산드 ‘만들어진 유대인’ 중 -


    벤구리온은 알았다
    위의 문장에서 말하는 2명의 헌신적 시오니스트란, 나중에 이스라엘 건국의 주역이 되는, 다비드 벤구리온(1886~1973) 총리, 그리고 이츠하크 벤츠비(1884~1963) 대통령입니다. 1918년 두 사람이 미국에 있을 때 ‘에레츠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라는 제목의 책을 함께 써냅니다. ‘에레츠 이스라엘’이란 ‘예전에 살았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게 될 그 땅, 이스라엘’이란 의미입니다. 시오니즘 냄새가 가득한 표현이랄 수 있겠지요.
    미래의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그 에레츠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를 추적한 끝에 “여느 농민이 다 그러하듯이 유대 농민도 조상 대대로 땀 흘려 일궈온 자기 땅에서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억압과 고난 속에서도 시골 주민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였다”고 써뒀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 할 것 없이 농민에겐 부쳐 먹을 땅이 곧 목숨입니다. 나라가 몇 번이나 들어서고 넘어져도 땅 자체가 사라져버리지 않는 한 대개 그 땅과 농민은 그대로입니다.

    1917년 역사적인 ‘벨푸어 선언’ 직후, 서구화된 유대인들 사이에선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여겨지던 시오니즘에 대해, 같은 핏줄이니 가능하다고 주장한, 이 희망찬 ‘에레츠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란 책을 오늘날까지 기억하는 사람들은 애석하게도 거의 없습니다.
    공저자인 벤구리온과 벤츠비부터 그렇습니다. 이들은 나중에 “민중 전체가 뿌리 뽑혔다고 주장하는” ‘이스라엘 국가수립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이런 전향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디아스포라는 없다
    저런 주장의 논리적 결론은 결국 디아스포라는 없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수십, 혹은 수백 만의 사람이, 나라가 망했다고 오랜 기간 이리저리 방랑하다, 저 머나먼 어떤 곳에서 정착하여 혈통과 문화와 언어 같은 것을 고이 보존했다, 다시금 원래의 땅에 정착한다는 스토리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구약의 모세에 빙의한 스토리 구성인데, 구약의 모세를 두고서도 그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일 뿐 더러, 그 스토리가 사실이라 해도 그가 ‘유대인의 지도자’이긴 한 거냐는 반론이 빠지지 않는 게 요즘입니다.
    그러면 유럽과 중동 일대 흩어진 그 수많은 유대인은 누구인가. 혈연이 아니라 개종의 결과였을 뿐입니다.
    우선 유대교 자체가 굉장히 포교에 적극적이었습니다. 특히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오늘날 어떤 자료를 봐도 이 역동적이고 확대 지향적인 성격을 반박할 수 없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유대교가 소수파들에게 제법 유용했다는 겁니다. 기원후 8세기 동유럽 일대 하자르 왕국이 대표적입니다. 투르크 계열 왕국이라 유대 쪽과 인연도 없었지만 기독교의 유럽, 동방정교의 러시아, 이슬람의 아랍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대교를 택합니다.
    유대교 자체의 매력도 있었습니다. 그 지역 일대에서 여러 제국들이 명멸하면서 사라져버린 소규모 집단의 공동체 의식을 유대교가 만들어줬다는 겁니다. “선택 받은 백성이 된다는 것, 신성한 민족에 합류한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차별 의식을 제공해주었고, 거기에 들이는 노력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었다.”
    나는, 우리는, 선택 받았다는 선민 의식이라는 거, 외로운 소수자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 줬을 겁니다. 밖에서 보면 그저 웃길 지라도 자기들끼린 세상 다시 없을 정도로 진지했을 겁니다.

    시오니즘에서 나치의 냄새가
    유대인은 압도적인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서 소수파로 이리저리 내내 치였습니다. 19세기 유럽에 민족주의 열풍이 들끓어 오르면서 아예 표적이 됐습니다. 슐로모는 그 역사를 이렇게 정리해뒀습니다.
    “1880년대에 새로운 민족주의적 특성을 띤 대중의 집단학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수백만 유대인들은 충격을 받고 서쪽으로 대량 이주를 서둘렀다. 1880~1914년 사이에 이디시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약 250만 명이 독일을 지나 그들을 받아주는 서구 국가로 갔다. 그들 중 일부는 아메리카 대륙의 안전한 해안가에 발을 디뎠다. 그들 중 3%가 채 되지 않는 수가 오스만 제국 통치 하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를 선택했고, 그 중 극소수가 그곳에 계속 머물렀다.”

    시오니즘은 게르만 민족주의가 들끓던 독일에서 생성되기 시작했고 “폴란드,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러시아, 루마니아의 도시와 마을에 밀집해 사는 광범위한 이디시어 사용 주민들 가운데 지식층”들이 흥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제 이스라엘로 향한 사람들은 이들 동유럽 일대 유럽인들이었습니다. 보다 서구화된 유대인들은 이를 거부했고 서유럽이나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예를 들자면 비트겐슈타인은 독일인으로서 1차대전 때 최전방에 자원입대했고, 한나 아렌트는 2차대전 히틀러의 만행을 보면서도 스스로를 독일 문명에 속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다른 책에서 슐로모는 “그로 인해 이스라엘의 주류는 가장 낙후된, 유대인 그룹에서도 ‘오리엔탈’ 취급받던 동유럽 지역 유대인들”이라 합니다. 이런 동유럽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식민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유대민족사를 창출해내고, 그 과정에서 유대민족만의 고유한 DNA를 찾아 헤매는, 흡사 나치 같은 언행을 보인다는 겁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후손”이 그러는 것을 보면 “히틀러가 매우 기뻐했을 것이다!”라는 게 슐로모의 절규입니다.

    텔아비브대 교수인 슐로모의 주장을 따라가면 자연스레 이런 결론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지금 팔레스타인 혹은 하마스 대 이스라엘 전쟁은, 어쩌면 ‘인종적 유대인’과 ‘종교적 유대인’ 간의 전쟁일 지도 모른다는.
    기이하게 배배 꼬인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지만,
    1918년 벤구리온과 벤츠비의 책이
    다시 불려 나와야 할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유대인’. 한국에서 꽤 인기 있는 아이템입니다. 디아스포라와 반만년 수난의 민족사, 라는 레퍼토리끼리 잘 통하는 바가 있어서 그럴 겁니다.
    이 책을 보면, 그리고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을 보면,
    아이언돔 말고 우리의 강인한 민족주의에 대해
    조금은 다른 상상을 해보는 것이 중요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중의 발명
    슐로모는 이 책을 내고 당연하게도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 중 가장 곤혹스러웠던 건 이스라엘 민중에 대한 배신이라는 비난이었을 겁니다. 거기에 대한 슐로모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농업생산자들로 이뤄진 문맹사회를 ‘민중’이라는 말로 정의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문제점 많은, 혼란스러운 시대착오의 징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중략) 다시 말해서 인간 집단이 그들의 주권을 위해 싸운 곳 어디서나 민중은 발명되었고, 장구한 내력과 먼 역사적 기원을 부여받았다.“
    그 어느 포스트모던 역사가보다도 더 포스트모던한 발언입니다. 정치적 독립을 결단하는 그 순간 장구한 민족사는 쉼없이 개발되고 재구성되며 만들어집니다. 그 장구한 민족사의 틀에 맞지 않아 사라져버린 무수한 기억들, 어쩌면 그런 것들이 그 옛날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진짜 얼굴일 지도 모릅니다. ‘유대인빠’가 많은 우리에게도 이건 여러모로 중요한 질문일 겁니다.

    독자 질문 & 의견 중 일부를
    함께 나눕니다
    가을 단풍 참 곱습니다. 주말 좋은 여행 다녀오시길 기원합니다.
    💬 "윤 정부의 언론장악 어디까지 와있나요”
    👉장악될 준비가 충분히 됐는데 장악되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분들이 더 많으신 것 같습니다. 😅
    💬 “지식의 팽창은 상식을 존중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즉, 왜 이런 지식이 필요한가와 이것이 상식과 스크럼을 짜는 데 거부감이 없는가에 따른 천착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막연한 지식의 팽창은 논란으로 전락하고, 논란은 무한궤도에 염치 없이 몸을 싣는다. 아무래도 포괄적인 지식 말고, '~체하는 것' 말고, 대중이 놓친 그 무엇을 찾아 보여주기를 바란다.”
    👉대중이 놓친 걸 제가 감히 가르칠 위치에 있진 않고요. 전 걍 함께 놀자는 겁니다. 제가 뭘 어쨌다고 이러세요. 😅
    💬 "재미있게 잘 보고 있어요”
    👉매번 반복되는 AI로 추정되는 답변이십니다. 😅
    다음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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