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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년 여름 지리산 난개발 리포트
    지금 이곳에선 2023. 7. 20. 20:26

    2023년 여름 지리산 난개발 리포트

    골프장, 케이블카, 산악열차 등 지리산을 향한 각 지자체의 개발사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개발 여론은 뜨거워질 전망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지리산은 누구의 것인가.

    기자명구례·남원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입력 2023.07.20 06:57826호

    6월21일 1만 그루 소나무가 잘려 나간 전남 구례군 산동면 골프장 예정지에서 골프장 개발에 반대하는 생명평화기도회가 열렸다.

    ⓒ시사IN 조남진

    수명을 다한 굴삭기 고무벨트가 산 중턱에 버려져 있었다. 아직도 땅은 굴삭기에 파인 자국으로 선명했다. 얼마나 많은 나무가 잘려 나갔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지리산국립공원과 겨우 170m가량 떨어진, 고개를 들면 노고단으로 향하는 길목인 성삼재가 올려다보이는 곳이었다.

    3월 말 어느 아침이었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 관산리 사포마을 주민 박홍진씨는 산책을 나왔다가 마을 뒷산 소나무 숲이 통째로 사라진 걸 목격했다. 한 군데가 아니었다. 뒷산 곳곳 소나무 숲이 잘려 나갔다. 벌목 작업을 하던 인부들에게 물어보니 “소나무 재선충 방제 작업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상은 딴판이었다. 구례군청에 확인해보니 이 일대 약 21만㎡(약 6만3500평)에 대한 벌채가 허가된 상태였다. 축구장 30개에 달하는 면적이다. 2월8일부터 시작된 벌목은 5월 초까지 계속됐다. 당초 허가 기간은 4월30일까지였으나 시한을 넘겨 무단 벌목했다.

    잘려 나간 나무는 1만 그루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사진 숲을 훼손한 만큼 당장 장마철을 맞아 산사태도 염려된다. 이곳은 골프장 예정지다. 3월23일 구례군은 시행사 피아웰니스, 시공사 삼미건설과 ‘구례온천CC 조성사업(가칭)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산동면 관산리 일대 150만㎡(약 45만 평) 부지에 27홀 규모로 ‘대중제 골프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계획이 현실화한다면 지리산국립공원 접경에 최초로 골프장이 들어서는 셈이다. 전북 남원시나 경남 하동군에 골프장이 있기는 하지만 지리산과는 꽤 떨어져 있다. 골프장을 추진하는 쪽에서는 ‘최초의 지리산 골프장’이라는 점이 중요한 홍보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사포마을과 다랑이논의 전경. 마을 뒤에 골프장 예정지가 있다.

    ⓒ시사IN 조남진

    골프장 건설 위해 나무 1만 그루 베었나

    문제는 이곳이 생태·환경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을 주민들은 골프장 건설에 유리하게 하기 위해 생태·자연도 1등급 숲을 벌목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환경부가 고시한 ‘골프장의 중점 환경영향평가 항목 및 평가방법 등에 관한 규정’을 보면, 생태·자연도 1등급 해당 여부와 멸종위기 동식물 서식 여부가 골프장 허가에서 중점 평가항목이다.

    물론 실제로 환경영향평가에 들어갔을 때에는 골프장 건설을 위해 의도적으로 나무를 잘라냈느냐가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구례군이 벌목 허가를 내린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뚜렷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생태·자연도 1등급 숲의 많은 부분이 사라진 만큼 결국 골프장 허가가 용이해질 수 있다는 것이 마을 주민들의 우려다. 벌목 허가가 이뤄진 시점도 문제다.

    산림자원법 등이 바뀜에 따라 올해 6월부터 20만㎡ 이상의 대규모 벌채는 민관 합동심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 벌목은 그 직전에 이루어졌다. 관련 법이 효력을 발휘하기 전에 구례군이 급히 벌목 허가를 내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골프장 예정지인 구례군 산동면은 본래 지리산온천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1997년 전라남도 첫 관광특구로 지정된 이후 온천 휴양지로 인기가 높았다. 지금은 다 옛말이다. 대표적 온천시설이었던 ‘지리산온천랜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고, 인근 숙박시설과 식당도 적잖이 문을 닫았다.

    그런데 이곳 지리산온천랜드의 소유주가 지리산 골프장 예정지의 소유주와 같은 인물이다. 외지 출신으로 수십 년 전부터 산동면 일대 땅을 사들인 김 아무개씨와 그 자제들이다. 그리고 골프장 시행사인 피아웰니스의 임직원 명단에도 이들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환경단체인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지리산사람들)’은 구례군이 ‘산림 보전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벌목 허가 등을 통해 골프장 개발업자에게 이익을 가져다준 것 아니냐며 지난 5월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사포마을 곳곳에는 골프장 개발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시사IN 조남진

    골프장 건설을 두고 산동면의 풍경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쇠락한 지리산온천관광단지 상가에는 ‘지리산 골프장 건설을 환영한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골프장 건설로 죽어가는 상권이 되살아나리라 기대하고 있다. 반면 골프장 예정지와 가까운 사포마을 풍경은 정반대다.

    골프장을 반대하는 현수막과 깃발이 마을 전체를 휘감고 있다.

    마을이 생긴 지 450년에 달하는 사포마을은 뒤로는 지리산을, 앞으로는 섬진강 지류를 끼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계단식으로 이루어진 ‘다랑이논’으로 유명해졌다.

    봄에 논에 물이 찼을 때, 가을에 누렇게 벼가 익었을 때 각각 달리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워 사진 촬영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무엇보다 다랑이논에서 수확하는 쌀은, 마을 사람들에게 주요한 먹거리다. 마을 주민들은 골프장이 들어설 경우 잔디 관리를 위해 살포하는 농약과 제초제에 오염된 물이 다랑이논으로 흘러들 것을 우려한다.

    자칫 오염된 논으로 낙인이 찍힐 경우 다랑이논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마을 주민으로 이루어진 ‘사포마을 골프장 건설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올해 ‘내셔널트러스트 이곳만은 지키자’ 공모전에 다랑이논을 응모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매년 시민공모전을 통해 훼손 위기에 처한 자연·문화 유산을 발굴해 선정한다. 지난해에는 새만금 수라 갯벌과 가덕도 숲이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지리산온천광관단지 상가에는 찬성 현수막이 걸렸다.

    ⓒ시사IN 조남진

    6월21일 오후 다랑이논을 마주하고 있는 마을 공터에서 ‘하지 축제’가 열렸다. 1년 중 낮이 가장 긴 하지를 맞아 열린 마을 축제지만 주제는 따로 있었다. 지리산 골프장 반대다. 마을 주민들이 파전과 막걸리 등을 준비했고 각지에서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만큼이나 청년들이 많았다.

    이들은 남원 실상사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등에서 자연친화적 삶을 공부하고 지리산에 터를 잡은 청년들이었다. 평소에는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의 삶을 실천하고 지역에 환경 이슈가 생기면 달려가 힘을 모은다.

    지리산사람들 윤주옥 대표는 “골프장 반대운동 등 지리산을 지키는 운동에 이들 청년의 참여가 큰 힘이 됐다”라고 말했다. 원래 이날 하지 축제에서는 마을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오케스트라 연주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축제 전날 구례군 산동면장이 학생들의 축제 참가를 막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골프장에 반대하는 마을 행사를 못마땅하게 여긴 행정 당국이 부당하게 개입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결국 이 공연은 열리지 않았다.

    지역 여론은 뒤숭숭하다. 3월23일 구례온천 CC 업무협약 직후 구례읍내에 골프장 건설을 지지하는 현수막이 400여 개나 나붙었다.

    4월21일 군민의날에는 각 지역 체육회가 골프장 지지 현수막과 팻말을 들고 입장하기도 했다. 관에서 총력을 기울여 밀어붙이는 만큼 불만이 있어도 목소리를 내는 주민은 많지 않다. 마을 축제 직전 골프장 예정지에서 열린 ‘생명평화기도회’에 참석한 구례성당 이요한 신부는 “골프장 문제로 예민해져 지역에서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다.

    나는 골프장 건설에 반대하는 개인 자격으로 이곳에 왔다”라고 말했다.

    산동면의 개발 이슈는 골프장만이 아니다. 지리산온천단지를 출발해 노고단 인근 종석대(1360m)까지 오르는 3.1㎞ 케이블카도 추진 중이다.

    과거에도 구례군은 이 지역에서 케이블카를 추진한 바 있는데, 환경부가 노고단을 둘러싼 생태경관 보전지역과 600m 이상 떨어지도록 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리자 이를 반영해 재추진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환경부가 공익성 등에서 부적합하다며 이 사업을 다시금 반려했지만 지리산 케이블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구례군은 환경파괴를 최소화하는 노선과 방안을 찾기 위한 연구용역을 의뢰한 상태다.

    6월21일 사포마을 하지 축제에 모인 이들이 풍물패를 따라 길놀이를 하고 있다.

    ⓒ시사IN 이오성

    국립공원 밖인 구례읍에서는 또 다른 케이블카 사업이 진행 중이다. 구례읍 봉서리에서 섬진강을 건너 오산(541m) 사성암 인근까지 2.34㎞ 구간을 운행하는 케이블카 사업이 그것이다. 사성암은 깎아지른 절벽에 위치한 암자인데, 절경으로 소문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구례군은 2025년 운행을 목표로 이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결국 구례에서만 두 개의 케이블카와 한 개 골프장이 추진 중인 셈이다.

    ‘친환경’ 산악열차의 환경훼손?

    구례읍에서 차로 30분을 달리면 도 경계를 넘어 전북 남원시 주천면 육모정에 닿는다. 육모정은 지리산국립공원 구룡탐방지원센터 인근에 있는 정자다. 산세가 아름다운 곳에 있어서 예로부터 지리산 서북권의 명소였다. 육모정에서 해발 1172m 정령치에 이르는 산악도로는 한계령을 방불케 할 만큼 험준하다. 이곳에는 산악열차가 들어설 예정이다. 산악열차는 말 그대로 산에서 운행하는 열차다.

    육모정에서 출발해 고기삼거리를 지나 정령치까지 이어지는 13.22㎞ 구간에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개발한 친환경 전기열차를 운행할 계획이다. 기존 도로를 폐쇄하고 그 위에 트램 형태의 궤도를 깔아 한겨울에도 열차를 타고 설경을 즐길 수 있게끔 한다는 것이다. 탄소 감축과 지역관광 활성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사업이라는 것이 남원시 측의 설명이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 본 산악열차 예정지는 위험 요소가 적지 않았다. 우선 이 지역은 상습 산사태 발생 구역으로, 곳곳에 산사태 방지막이 설치돼 있었다. 이런 길에 무게 50t이 넘는 산악열차가 운행할 경우 안전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낙석 방지 시설을 강화하고, 산악열차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다리를 새로 지으려면 당초 사업비 1100억원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 전망이다. 경제성 논란도 심각하다. 지리산 산악열차는 애초에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42회 운행하도록 계획돼 있었다.

    문제는 산악열차 노선이 상하행선이 구분되지 않은 ‘단선’이라는 점이다. 한 대가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올라오는 다른 열차와 충돌하지 않기 위해 시간 안배를 적절히 해야 한다. 육모정에서 정령치까지 13.22㎞를 운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8분. 현실적으로 하루 13시간 동안 42회 운행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주옥 지리산사람들 대표가 전북 남원시 정령치 전망대에서 산악열차 계획구간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근원적인 문제도 있다. 13.22㎞ 구간 중 9.5㎞가 국립공원 구역에 속해 있다는 점이다. 산악열차를 운행하려면 남원시가 국립공원계획변경을 신청하고 심의를 받아야 한다.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지적이 잇따르자 남원시는 ‘국립공원 밖’ 지역인 고기삼거리-고기댐 구간 1㎞만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해발 1172m 정령치까지 오르는 ‘한국판 융프라우 산악열차’라는 홍보는 쏙 들어갔다. 남원시 관계자는 “경제성 등 논란이 불거지면서 13.22㎞ 전체 구간 사업 추진은 일단 멈춘 상태다. 지금은 시범사업 설계에만 집중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지리산 일대가 사실상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개발한 산악열차 기술의 실험장이 되고 마는 셈이다.

    그래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시범’사업인 만큼 자동차가 다니고 있는 기존 도로를 폐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궤도를 깔기 위해서는 멀쩡한 도로 옆에 궤도용 도로를 새로 건설해야 한다. 케이블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환경훼손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친환경 산악열차라는 말이 무색하다. 남원시 관계자는 “시범사업 기간 중 가로수 등 일부 환경훼손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만약 시범사업 이후 산악열차 사업에 전망이 없다는 판단이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윤주옥 지리산사람들 대표는 “궤도를 깐 도로와 산악열차 차량은 거대한 흉물과 고철덩어리로 남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남원시에는 케이블카 계획도 있다. 운봉읍 허브밸리에서 바래봉까지 2.1㎞ 구간이다. 10여 년 전부터 케이블카를 추진해온 남원시는 바래봉까지 케이블카를 올린 후 그 위에 호텔을 짓겠다는 계획까지 세운 바 있다. 산악열차 추진 이후 케이블카 사업은 잠정 중단된 상태지만, 남원시 측이 명시적으로 사업을 포기한다고 밝힌 적은 없다.

    지리산은 1967년 국내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육상에서 가장 넓은 국립공원으로, 둘레가 320여㎞나 된다. 경남 하동·함양·산청, 전남 구례, 전북 남원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있다. 〈그림〉을 보자. 지리산에 속한 각 지자체가 이 산을 두고 어떤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는지 정리했다.

    이번에 찾은 구례와 남원뿐 아니라, 다른 지자체 역시 저마다 케이블카 따위 사업계획을 들고나왔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속한 경남 산청군은 시천면 중산리에서 장터목 인근 구간에 케이블카를 놓는다는 계획이다.

    산청군은 아예 케이블카 추진 전담 부서까지 만들었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에서는 주민들이 먼저 나서 ‘지리산 케이블카 유치위원회’를 만들었다. 지리산 남쪽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향하는 노선이 산청군의 계획이라면, 함양군의 계획은 북쪽인 백무동에서 천왕봉으로 향하는 계획이다.

    경남의 두 지자체가 각기 케이블카 계획을 내놓은 가운데 지난 3월 박완수 경상남도 도지사는 도 차원에서 지리산 케이블카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6년 경상남도가 산청군과 함양군을 잇는 세계 최장 규모 케이블카를 추진한 이후 재도전이다.

    경상남도 관광개발과 관계자는 “지리산을 둘러싼 여러 지자체가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하는 터라 영남권 하나, 호남권 하나 정도가 현실적일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2016년 계획에 비해 길이는 크게 줄어들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경남 하동군의 경우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라는 슬로건 아래 가장 야심차게 지리산 개발계획을 추진해왔다. 하동군 화개·악양·청암 3개 면 일원에 산악열차 12㎞, 케이블카 3.6㎞, 모노레일 2.2㎞ 등을 설치하고, 지리산 형제봉 정상에 미술관과 천문대, 5성급 호텔 등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법령의 완화가 필수였다.

    지리산 향한 각 지자체의 개발 욕망

    그러나 격렬한 찬반 논란 끝에 하동군이 요청했던 규제완화가 무산되자 민간 사업파트너였던 대림건설(현 DL건설)이 2021년 3월 사업 종료를 선언했다. 5성급 호텔 건설 등 경제성이 있는 사업이 좌초되자 스스로 손을 뗀 것이다. 2022년 8월 하동군은 전체 사업비 1650억원 가운데 1500억원을 감당할 민간 투자자가 나타날 때까지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상태이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다.

    지리산 개발은 이처럼 각 지역의 숙원 사업이었지만, 최근 들어 기류가 달라진 이유가 있다. 지난 2월 환경부가 강원 양양군이 제출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에 대해 조건부 동의 결정을 내리면서부터다. 이후 지리산을 낀 지자체들이 “설악산은 되는데 우린 왜 안 돼?”라며 케이블카 설치 계획을 들고나왔다. 더욱이 문제는 내년 총선이다. 지역 여론이 이미 들썩이는 만큼 지리산을 끼고 있는 각 지역 국회의원 후보들이 파격적인 개발 공약을 제시할 공산이 커졌다.

    기후위기 대응의 방법으로 최근 주목받는 개념 중에 ‘자연기반해법’이 있다. 거창하거나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탄소포집 등 인위적인 기술개발에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므로 있는 그대로의 자연생태계를 보전해 기후위기에 대응하자는 이야기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 때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131개 국가가 자연기반해법을 기후위기 대응 수단으로 삼기로 했다.

    국내에서 자연기반해법을 첫 번째로 적용할 수 있는 곳은 두말할 것 없이 국립공원 1호 지리산이다. 그러나 2023년 여름 지리산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본연의 자연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그 당사자 중 하나인 구례군은 최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흙 살리기’ 운동에 나섰다. 유기농법으로 건강하게 형성된 흙의 탄소저장 능력이 뛰어나다는 캠페인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6월1일 사포마을 골프장 건설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비롯한 29개 시민·환경단체는 세종시 환경부 청사 앞에서 ‘지리산을 겨냥한 개발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단체는 환경부 관계자와의 면담을 요구했으나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 할 말이 있으면 문서로 접수해달라”는 말을 들었다. 참석자들은 처음 겪는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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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케이블카#골프장#난개발#지리산온천#산악열차#자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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