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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1위 부자’ LVMH회장은 어떻게 럭셔리 제국 황제 됐나
    지금 이곳에선 2023. 5. 19. 16:29

    ‘세계1위 부자’ LVMH회장은 어떻게 럭셔리 제국 황제 됐나

    [WEEKLY BIZ] 커버 스토리

    75개 브랜드 거느린 재산 280조원 세계 최고 부자의 명품 제국 건설기

    안중현 기자

    입력 2023.05.11. 20:00업데이트 2023.05.14.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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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그래픽=김의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생전에 베르나르 아르노(74) 루이비통모에헤네시그룹(LVMH) 회장을 찾아와 경영 전략과 관련한 조언을 구했다. 잡스는 “당신은 스스로를 위한 영원한 것을 갖고 있나요”라고 물었다. 아르노 회장이 무슨 뜻인지 묻자, 잡스는 “내가 아이폰을 팔기 때문이죠”라고 했다. 아이폰 사업의 먼 미래를 확신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아르노 회장이 답했다. “25년 후에도 아이폰이 존재할까? 그건 모르겠소. 다만 이건 확신할 수 있소. 오랜 시간이 흘러도 세계인들은 꾸준히 돔 페리뇽을 마시고 있을 것이오. 우리는 역사의 일부를 팔고 있소.” 1921년 생산을 시작한 돔 페리뇽은 LVMH가 판매하는 고급 샴페인이다. 잡스는 돔 페리뇽의 영속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이런 잡스와의 일화는 아르노 회장이 명품 사업의 불멸성을 강조하기 위해 종종 소개하는 스토리다. 패션·보석·시계·향수·샴페인을 망라해 아르노 회장은 브랜드 75개를 거느리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명품 제국을 세웠다. 그가 LVMH 회장에 오른 1989년 32억유로였던 LVMH 매출은 작년에는 25배에 달하는 792억유로가 됐다.

    /일러스트=김하경

    올해 아르노 회장은 ‘럭셔리 제국의 황제’에 그치지 않고 세계 최고 부호의 자리까지 등극했다. 미국 포브스가 발표한 ‘2023년 억만장자 순위’에서 아르노 회장은 2110억달러(약 280조원)의 재산을 보유해 1위에 올랐다. 2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1800억달러),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1140억달러)를 따돌렸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아르노 회장의 재산은 1580억달러로 머스크(2190억달러), 베이조스(1710억달러)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의 빠른 금리 인상으로 빅테크 주가가 급락해 ‘IT 거품’이 빠진 반면, 중국의 명품 소비가 회복돼 LVMH 주가는 1년 사이 60% 넘게 급등했다. 그에 따라 아르노 회장의 재산이 크게 불어나며 부호 순위가 요동쳤다.

    1997년 포브스 부자 순위에 100위로 이름을 올린 아르노 회장은 26년 만에 1위를 차지했다. 이 기간 그의 재산은 31억달러에서 2110억달러로 68배가 됐다. LVMH는 지난달 유럽 기업 중에선 처음으로 시가총액 5000억달러 고지에 도달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세계 부호 명단 최상위권을 미국 IT 기업 창업자들이 점령한 가운데 유럽에서 전통 산업을 밀고 나가 최고 부자로 올라섰다는 점에서 아르노 회장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금자탑을 쌓았다. 압도적인 1등이지만 그는 “여전히 더 멀리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어떻게 럭셔리 제국의 황제가 될 수 있었는지 WEEKLY BIZ가 짚어봤다.

    영감을 준 택시 기사의 한마디

    어린 시절 수재였던 아르노 회장은 프랑스의 MIT로 불리는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건설 회사에 들어가 경영 수업을 받았다. 29살이던 1978년 아버지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넘겨받았다. ‘금수저’는 맞지만 애초부터 명품 사업을 물려받은 건 아니었다. 그는 젊어서부터 머리 회전이 빠르고 과감했다. 회사의 건설 부문을 매각한 뒤 부동산 개발업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지중해 연안에서 휴가용 콘도 개발 사업에 뛰어들어 큰돈을 벌었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이 지난달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아르노 회장은 이 무렵 뉴욕을 방문했다가 블루밍데일 백화점에서 산 크리스챤 디올의 목욕 가운을 들고 택시를 탔다. 그는 택시 기사에게 “프랑스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 누가 대통령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택시 기사는 “프랑스 대통령은 모르지만 크리스챤 디올은 안다”고 했다.

    아르노 회장은 택시 기사와 나눈 짧은 대화가 럭셔리 제국의 단초가 됐다고 말한다. 그는 “디자이너 크리스챤 디올은 에펠탑처럼 프랑스 문화의 일부”라면서 “그 이름이 가진 힘을 깨달았다”고 했다.

    1981년 대선에서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이 승리하자 아르노 회장은 가까운 친구에게 회사를 맡기고 미국으로 떠나 플로리다에서 부동산 개발업을 했다. 좌파 정부가 부유한 사업가에게 적대적일 것으로 보고 한동안 떠나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1984년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찾아왔다. 경영난에 시달리며 공적 자금에 의지해 온 부삭(Boussac)그룹을 프랑스 정부가 매각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섬유 회사에서 출발한 부삭은 아르노 회장이 원한 ‘보석’을 갖고 있었다. 뉴욕의 택시 기사가 깨달음을 준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이다.

    서둘러 귀국한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에콜 폴리테크니크 인맥을 동원해 사회당 고위 인사들에게 로비를 벌여 부삭 인수자로 결정됐다. 당시 노동계 눈치를 보던 사회당 정부는 대량 해고가 벌어질까 걱정이었다. 아르노 회장은 부삭 임직원 1만6000명 중 1만2250명은 유지하겠다고 약속해 정부에서 부채를 탕감받았다.

    인수 대금은 당대 전설적인 은행가였던 앙투안 베른하임의 도움을 받아 대출로 해결했다. 중견 부동산 개발업자가 순식간에 대기업 경영자로 발돋움한 것이다.

    부삭을 손에 넣은 아르노 회장은 크리스챤 디올과 고급 백화점 봉마르쉐만 빼고 나머지 브랜드는 매각하거나 없애버렸다. 부삭의 고용 인원은 약 8000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아르노 회장에게는 ‘터미네이터(말살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영화 방불케 한 LVMH 인수전

    명품 산업의 교두보를 마련한 아르노 회장은 “10년 안에 세계 최대 명품 그룹을 이끌겠다”고 공언했다. 도약의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1987년 6월 모에헤네시와 루이비통이 합쳐 LVMH가 탄생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모에헤네시 출신 알랭 슈발리에 회장과 루이비통 출신 앙리 라카미에 부회장이 주도권을 놓고 갈등을 벌였다. 아르노 회장은 LVMH 지분을 사들이며 균열을 비집고 들어갔다.

    당시 슈발리에 회장은 영국 주류 회사 기네스를 끌어들여 경영권을 방어하려고 했다. 이에 맞서 라카미에 부회장은 아르노 회장과 손을 잡고 슈발리에·기네스 연합에 대항했다. 하지만 아르노 회장은 돌연 라카미에를 배신하고 슈발리에·기네스 연합에 가세했다. 막대한 자금을 보유한 기네스에 맞서지 말라는 은행가 베른하임의 조언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에선 “슈발리에가 닭장을 지키기 위해 늑대를 초대했다”는 말이 나왔지만, 슈발리에는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우군이 필요하다”며 아르노 회장을 껴안았다.

    하지만 아르노 회장은 LVMH를 통째로 손에 넣겠다는 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세웠다. 베른하임의 도움을 받아 지분을 계속 늘려갔다. 특히,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로 주가가 폭락하자 아르노 회장은 재빨리 싼값에 지분을 대량 매집했다. 뒤늦게 라카미에와 슈발리에는 루이비통과 모에헤네시를 다시 분리한다는 계획으로 아르노 회장을 막아보려 했지만, 아르노 회장은 지분을 더 모으며 이들의 계획을 무산시켰다.

    결국 슈발리에가 물러났다. 1989년 40세에 LVMH 수장이 된 아르노 회장은 라카미에도 축출했다. 명실상부하게 명품 업계의 정점에 올라섰다. 그가 거칠게 밀어붙여 부삭과 LVMH를 손에 넣자 대중은 ‘캐시미어를 두른 늑대’라는 별명을 붙였다.

    공격적 M&A로 사세 확장

    LVHM를 손에 넣은 이후 아르노 회장은 거침없이 인수·합병(M&A)을 이어가며 사세를 확장했다. 벨루티, 겐조(이상 1993년), 겔랑, 셀린(이상 1996년), 로에베(1996년), 펜디(2001년), 불가리(2011년), 로로피아나(2013년) 등 기라성 같은 브랜드를 잇따라 인수했다. 그의 공격적인 M&A를 가리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아르노 회장은 유럽의 자본가이지만 미국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최대 보석 회사인 티파니와 독일 신발 브랜드 버켄스탁을 인수했다.

    특히 미국을 대표하는 명품 기업 티파니를 인수한 것은 글로벌 명품 산업의 지형을 바꿀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명품 시장은 의류·가방의 ‘소프트 럭셔리’ 부문과 보석·시계의 ‘하드 럭셔리’ 부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아르노 회장이 티파니를 손에 넣으면서 LVMH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졌던 ‘하드 럭셔리’ 부문의 경쟁력을 대번에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아르노 회장의 셋째 아들 알렉상드르 아르노 티파니 수석부사장(왼쪽), 티파니 홍보대사 갤 가돗(가운데)과 앤서니 레드루 티파니 최고경영자(CEO)가 2023년 4월 26일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에서 열린 티파니 플래그십 스토어 재개장식에서 리본을 커팅하고 있다./로이터 연합

    광범위하게 브랜드를 수집한 것과 별개로 아르노 회장이 명품 사업을 빠른 속도로 키워낸 성공 전략은 크게 3가지를 꼽을 수 있다. 디자이너의 역량을 극대화해 상품의 매력을 끌어올렸고, 명품의 대중화를 추구해 저변을 넓혔다. 그리고 중국 시장에 일찌감치 진출하는 결단을 내렸다.

    아르노 회장은 디자이너의 재량을 최대한 존중하는 경영자다. 그는 “디자이너가 제한 없이 창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비즈니스의 기반”이라며 “관리자가 계산기를 손에 쥐고 디자이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 창의적이고 훌륭한 작업은 중단될 것”이라고 했다. 1995년 지방시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돼 인연을 맺은 존 갈리아노가 아르노 회장이 아낀 대표적인 디자이너다.

    갈리아노는 2000년 패션쇼에서 노숙자에게 영감을 받아 신문지로 만든 드레스를 선보였다. 충격적인 소재와 디자인 때문에 비판 여론이 일자 아르노 회장은 “충격을 주지 않는다면 창조적이지 않는 것”이라며 그를 두둔했다.

    카를 라거펠트, 알렉산더 매퀸, 마크 제이콥스, 마이클 코어스 같은 저명한 디자이너들도 아르노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전통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 LVMH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명품 소유욕 자극하는 마케팅 주효

    아르노 회장은 명품을 갖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는 마케팅에도 능했다. 상류층 거주지에 있던 명품 매장을 백화점이나 면세점으로 확대해 중산층도 명품을 가까이에서 접하게 하고, 동경하도록 했다. LVMH 상품을 파는 매장은 전 세계 5600여 곳에 달한다. 상류사회와 세계 일류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브랜드에 심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루이비통은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아르헨티나 대표팀 리오넬 메시와 포르투갈 대표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루이비통의 가방 위에서 체스를 두고 있는 모습을 광고로 만들었다./루이비통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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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 마케팅도 강화했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루이비통의 서류 가방 위에서 체스를 두는 광고 사진을 활용한 예가 대표적이다. 미국 투자 회사 번스타인의 루카 솔카 애널리스트는 “가장 전통적인 산업에 미국식 비즈니스 전술을 도입해 글로벌하고 고급스러우며 인스타그램에 어울리는 기업 역량을 갖추게 됐다”며 “아르노 회장은 특권층의 전유물을 100만명에게 파는 ‘역설’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일찌감치 중국에 진출한 전략도 주효했다. 1992년 중국이 막 개방을 시작했던 무렵 루이비통은 베이징의 팰리스호텔 지하에 처음으로 매장을 냈다. 도로에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많았던 시절이라고 아르노 회장은 회상한다. 하지만 그는 중국에서 명품 시장이 생겨날 것으로 확신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현재 LVMH의 전체 매출 가운데 중국 비율이 30%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는 2030년 전체 명품 소비자의 40%가 중국인일 것으로 전망한다.

    아르노 회장의 공격적인 사업 확장이 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1999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브랜드 구찌를 노리다가 피노프랭탕르두트(현 케링그룹)에 빼앗겼다. 구찌 인수 실패 이후 아르노 회장은 에르메스를 얻기 위해 지분을 17%까지 사모았다. 하지만 에르메스가 가족 지주 회사를 설립해 경영권을 방어하고 공시 의무 위반으로 아르노 회장을 고발해 반격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럭셔리 제국의 후계자는 누구

    호사가들의 관심은 만 74살인 아르노 회장의 뒤를 누가 이어받느냐에 쏠린다. 지난 3월 그는 LVMH 회장 정년을 만 80세로 늘려 6년은 더 현장 경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미 후계자 선정 작업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아르노 회장은 한 달에 한 번 다섯 자녀를 모아 함께 점심을 먹는다. 이 자리에서 그는 갖가지 질문을 쏟아내고 자녀들의 대답을 듣는다고 한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럭셔리 제국을 이끌 후계자 선정을 위한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아르노는 두 번 결혼해 딸 하나와 아들 넷을 뒀는데, 모두 LVMH 산하에서 일하고 있다. 맏딸 델핀(48)은 올해 초 크리스챤 디올의 CEO로 임명됐다. 둘째 앙투안(45)은 지난해 12월 가족의 LVMH 지분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는 지주회사인 크리스챤 디올 SE의 CEO가 됐다. 델핀과 앙투안이 첫 아내와의 자식들이고 셋째부터는 두 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았다. 현재 셋째 알렉상드르(30)는 티파니 부사장, 넷째 프레데리크(28)는 태그호이어 CEO, 막내 장(24)은 루이비통 시계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후계자를 정할 때 아르노 회장이 모교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했는지 여부를 고려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문제를 빠르게 분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며 모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표시한다. 다섯 자녀 중 넷째 프레데리크와 막내 장이 에콜 폴리테크니크 졸업생이다.

    시드니 톨레다노 전 크리스찬 디올 CEO는 “아르노 회장은 매우 실용적인 사람”이라며 “승계를 해야 할 시점의 경영 상황을 고려해 최적격이라고 판단한 이를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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