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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만 간신히 빠져나와, 어떻게 살라고”... 거리엔 야속하게 재만 날렸다
    지금 이곳에선 2023. 4. 12. 08:49

    “몸만 간신히 빠져나와, 어떻게 살라고”... 거리엔 야속하게 재만 날렸다

    [강릉 산불] 불타버린 삶의 터전… 이재민들 망연자실

    박지민 기자 안준현 기자 조재현 기자

    입력 2023.04.12. 03:00업데이트 2023.04.12. 07:59

    잿더미가 된 펜션마을 - 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휩쓸고 간 강릉시 저동의 펜션마을. 마을 내 주택과 펜션들이 잿더미로 변해 있고, 곳곳에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소방관들은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잔불 정리 중이다. 이날 불은 강풍을 타고 1시간 40여 분 만에 2.8km가량 떨어져 있는 해변까지 번졌고, 오후 4시 30분쯤 큰 불길이 잡혔다. /뉴스1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일어난 11일 산불은 오후 3시 30분쯤 비가 내리면서 잦아들었다. 큰 피해를 본 안현동 펜션마을에서는 잔불이 꺼지는 모습이 보였다. 한 주민은 “집이 다 타버린 뒤에 오는 비가 야속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감사한 비”라며 “계속 비 소식이 있다는데, 한시라도 빠르게 잔불이 꺼지기를 바랄 따름”이라고 했다. 산불 피해 주민들이 모여 있던 강원 아이스아레나에서는 자원봉사자들과 일부 이재민이 비가 내리자 “너무 다행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등 탄성을 내지르기도 했다.

    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에서 발생한 산불로 뼈대만 남은 채 불타고 있는 한 건물(왼쪽 사진)에서 소방관이 불을 끄고 있다. 이날 불은 초속 30m의 강풍을 타고 경포대해수욕장, 사근진해변까지 순식간에 뻗어나갔다./소방청 제공/뉴스1

    하지만 화마의 흔적은 강렬했다. 이날 오후 3시 강릉시 안현동 펜션마을에는 주택·펜션 수십 채가 불에 타 잔해만 남아 있었다. 산불은 이날 오전 마을을 덮쳤다. 마을 곳곳에서는 꺼지지 않은 불길이 눈에 띄었고, 메케한 연기도 피어올랐다. 성인 남성도 몸을 가누기 어려운 강한 바람에 재가 흩날렸고, 길 곳곳 깨진 유리창 파편들로 걷기가 어려웠다.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에서 20년 가까이 펜션을 운영했다는 김영삼(52)씨는 본인 소유의 자택과 펜션 2채가 모두 타버렸다고 했다. 김씨는 “키우던 고양이도 불로 잃고, 자녀들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도 모두 타버렸다”며 “겨우 몸만 대피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너무나 막막하다”고 했다.

    11일 산불이 발생한 강릉시 저동 야산 인근에서 주민 이세기(64) 씨와 그의 가족이 집이 전소된 뒤 살아남은 자신이 키우던 소 두 마리를 가족과 함께 구출하고 있다. 이씨는 이곳 저동 야산 아래 42년째 거주 중이었으나 이번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었다. 키우던 소 세 마리 중 한 마리는 화마에 도망갔고 두 마리는 구출됐다./연합뉴스

    이곳에서 10여 년간 펜션을 운영한 신동윤(76)씨는 “3층짜리 펜션을 6개월째 3억원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었다”며 “타는 냄새가 나자마자 펜션을 뛰쳐나갔는데 불이 순식간에 번져버렸다”고 했다. 그는 “다행히 손님은 아무도 없었지만, 짐은 하나도 들고 오지 못했다”고 했다. 주민 이건모(70)씨는 “이웃 주민들의 집이 다 타버려서 망연자실했다”며 “이쪽에 나무가 많고 바람이 심해서 산불이 크게 번진 것 같다”고 했다.

    11일 강원 강릉 난곡동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로 바람에 옮겨 붙어 전소된 안현동의 한 민가와 펜션을 찾은 주민이 슬픔에 잠겨 있다. /뉴시스

    강릉시 저동 주민 전진하(69)씨는 “공무원들이 불났다고 전화를 해서 급하게 대피하느라 장화 하나만 신고 나왔는데, 휴대전화 말고는 아무 짐도 챙기지 못했다”며 “5년 정도 양봉업을 해왔는데, 벌도 다 타 죽어버렸다”고 했다. 전씨는 “나이도 많은데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일부 주민은 119 신고를 했지만, 대응이 늦어져 집을 잃었다고 했다.

    안현동에 사는 조인숙(62)씨는 “산에서 연기가 나고 집 지붕에 불이 붙어 119 신고를 했는데, 1시간 넘게 소방차도 오지 않았다”며 “혼자 지붕에 물을 30분 넘게 퍼부었는데 결국은 다 타버렸다”고 했다. 그는 “소방차들이 산으로만 가고 집이 밀집된 곳으로는 안 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했다.

    인근 주민들은 강릉 아이스아레나, 사천중학교 등으로 대피했다. 저동 아파트에 사는 김애선(67)씨는 “아파트 텃밭도 다 타버려서 놀란 상태였는데, 아파트 밖으로 나가라는 방송이 나와서 가까스로 도망쳤다”며 “연기가 너무 자욱해 숨을 못 쉬어서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사천중으로 대피한 조규남(91)씨는 “집이 탔는지 안 탔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급하게 약 보따리만 챙겨서 나왔다”며 “농장도 없고 남은 것은 집뿐인데 불에 탔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이번 산불과 강풍의 영향으로 강원 지역 학교 23곳이 휴업·단축 수업을 했다. 김진태 강원지사는 “마지막까지 불을 다 진압하고, 재산 피해를 더 확실하게 조사해서 특별재난지역에 포함되도록 중앙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3/04/12/IR3MR33RMNFBNN55RQJWET5L4E/?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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