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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冬장군 물렀거라’ 독해도 술술 팔리는 고도주
    지금 이곳에선 2023. 1. 31. 14:56

    ‘冬장군 물렀거라’ 독해도 술술 팔리는 고도주

    입력 2023.01.31 09:05
    추위는 술을 부른다.
    추울 때 도수가 높은 술을 마시면 몸이 따뜻해진다.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체내 알코올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혈액이 내부 장기가 아닌 피부 표면으로 몰리는데, 이때 피부가 달아오르면서 체온이 순간적으로 높아진다.이 때문에 추운 지역에 자리 잡은 국가에서는 고도수(高度數) 주류를 찾는 수요가 항상 많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알코올 의존 장애(알코올 중독)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들이 주로 추운 지역에 몰려있다. 순수 알코올 소비량을 기준으로 1위인 헝가리와 2위 러시아, 3위 벨라루스는 물론 4위 라트비아, 6위 슬로베니아, 8위 폴란드, 9위 에스토니아, 10위 슬로바키아 등 10위권 내 주요 국가 대부분이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거나, 한 국가 걸러 자리한다.
    주류업계에서 고도주(高度酒)라 하면 보통 알코올 도수가 40도를 넘어가는 술을 말한다. 일반적인 위스키 도수가 이 정도다. 반면 앞서 말한 국가에서 주로 소비하는 고도주는 보통 60도에서 높게는 90도를 웃돈다. 그야말로 한 입 머금는 순간 ‘식도(食道)가 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온몸으로 알코올 기운이 짜릿하게 퍼지는 수준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어렵사리 구해야 했던 40도 이상 고도주 시장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단순히 역대급 한파의 영향은 아니다. 주류 업계에서는 부어라 마셔라 하는 음주문화가 점차 밀려나고, 본인 취향에 맞는 술을 잔으로 마시는 문화가 점차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독한 술을 기반으로 하는 하이볼, 마티니 같은 칵테일 수요가 급증한 덕분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31일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시스템에 따르면 ‘해적들의 술’로 알려진 럼(rum)주 수입 금액은 올해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럼은 사탕수수나 당밀을 발효시킨 다음 증류한 고도주로, 알코올 도수가 보통 45~75도를 넘나든다. 이 술은 이전까지 국내에서 ‘캡틴큐’ 같은 저렴한 브랜드 술로 알려졌지만, 최근 세계적인 럼주 브랜드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수입금액이 급증했다.
    2018년 227만달러(약 28억원)였던 럼주 수입액은 지난해 292만달러(약 36억원)로 29% 올랐다.
    대표적인 고도주이자 증류주 진(gin)은 같은 기간 2배 이상 수입금액이 불어났다. 진 수입액은 2018년 235만달러(약 29억원)에서 지난해 531만달러(약 65억원)로 불어났다. 수입액뿐 아니라 수입 중량도 451톤에서 900톤으로 딱 2배 증가했다.

    그래픽=손민균
    한국베버리지마스터협회 관계자는 “쿠바에서 만드는 하바나클럽 같은 고급 럼주, 일본 산토리에서 만드는 프리미엄 진 수이(Sui) 같은 술은 잔으로 마시기보다 주로 칵테일 믹싱(섞기)에 쓰인다”며 “지난해부터 믹솔로지(mixology) 수요가 넘치면서 10년 가까이 제자리였던 럼과 진 수요가 같이 뛰었다”고 분석했다.
    럼은 모히토, 다이키리, 피나 콜라다 같은 유명 칵테일에 주재료로 쓰인다. 진은 가장 기본적인 칵테일 가운데 하나인 진앤토닉에 들어간다. 그 밖에도 코로나 시기 내내 바닥을 쳤던 보드카 수입금액 역시 지난해 2019년 이후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9년 880만달러(약 108억원)였던 보드카 수입액은 2020년 556만달러(약 68억원)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745만달러(약 92억원)로 뛰어올랐다. 러시아산이 주로 차지했던 자리는 라트비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같은 국가에서 만드는 보드카가 채웠다.
    최근에는 위스키 시장에서도 일반적인 40도 수준 제품을 넘어 60도를 넘나드는 캐스크 스트렝스(cask strength) 제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캐스크 스트렝스란 위스키를 숙성한 참나무통 속 원액에 물을 첨가해 희석하지 않고 그 도수 그대로 병에 넣은 제품을 말한다.
    캐스크 스트렝스 위스키는 스트레이트 잔에 따라 한 번에 쭉 들이켜는 술이 아니다. 도수가 높기 때문에 부드러운 목 넘김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신 위스키가 가진 고유한 맛과 향에 집중하기 좋다. ‘천천히 음미하기 좋은 술’이다.
    박찬욱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에 나와 품귀현상을 빚었던 대만산 싱글몰트 위스키 카발란 솔리스트가 이런 캐스크 스트렝스 위스키다. 영화 속 바로 그 제품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쏘 쉐리(Kavalan Solist Oloroso Sherry Cask)는 도수가 다른 위스키보다 15도가량 높은 55도다.
    이마저도 일정하지 않다. 어떤 참나무통에서 원액을 꺼냈느냐에 따라 도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부 제품은 60도를 넘어서기도 한다. 스코틀랜드 싱글몰트 위스키 라프로익 10년 CS(58.3도)나 미국 켄터키 버번위스키 부커스(60~65도), 레드브레스트 12년 CS(57.4도)도 도수가 60도에 근접하는 캐스크 스트렝스
    한국양조증류아카데미 관계자는 “어느 산지에서도 캐스크 스트렝스 위스키를 단번에 들이켜는 식으로 마시라고 권장하지 않는다”며 “좋은 위스키가 지닌 맛과 향을 제대로 느끼려면 잔에 30~40밀리리터(ml)를 잔에 따라 5~10ml씩 여러 번에 걸쳐 끊어 마셔야 하는데, 이런 음주 방식이 최근 추세에 잘 맞는다”고 말했다.
    주류업계에서는 지난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증류식 소주 열풍도 고도주 선호 풍조가 일부 반영된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국민 술’ 소주는 1924년 35도로 출발해 올해 1월 기준 16도까지 내려왔다. 주류 제조사들은 ‘소비자들이 기존 소주 맛을 유지하면서도 목 넘김이 편한 부드러운 술을 선호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국세청이 공개한 ‘최근 5년간 주류품목별 반출량 및 수입량’ 자료를 보면 국내 희석식 소주 소비량(반출량)은 13%가 줄었다. 병 수로 따지면 성인 1인당 희석식 소주 소비량은 2017년부터 2021년 5년 사이 10병이 줄었다.
    증류식 소주는 희석식 소주가 밀려난 자리에 한 발을 뻗는 데 성공했다. GS25에 따르면 2021년 2% 수준이었던 증류식 소주 매출은 지난해 8월 기준 25%까지 올라왔다. 목 넘김보다 술이 가진 풍미를 중요하게 여기는 소비자가 늘어났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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