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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1명이 떨어져 죽는다…고공 작업자 추락사 못 막는 이유지금 이곳에선 2022. 12. 22. 14:31
매달 1명이 떨어져 죽는다…고공 작업자 추락사 못 막는 이유
등록 :2022-12-22 11:00
수정 :2022-12-22 13:52
이승욱 기자 사진
갈기갈기 찢긴 ‘보호대’…로프 절단 막기 어려워지난 10월10일 오전 11시40분께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30층짜리 아파트에서 외벽 청소 작업을 하던 30대 남성 ㄱ씨가 70미터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독자 제공
차준호는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49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었다. 2021년 9월27일의 일이다. 그날 차준호는 외줄에 의지해 아파트 외벽을 닦고 있었다. 꼭대기 층부터 청소를 시작해 15층에 이르렀을 때, 차준호의 몸을 지탱하던 작업 로프가 끊겼다.
스물아홉살 청년은 51m 아래 바닥으로 속절없이 추락했다. 그에겐 부인과 네살 난 아들이 있었다.
차준호가 죽은 뒤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이 개정됐다. 로프형 작업대를 이용해 외벽 청소를 할 때 사업주가 로프 보호대를 반드시 설치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로도 고공 작업자들은 계속 떨어졌다. 차준호가 당한 것과 비슷한 사고가 올해만 모두 10건 이상 있었다. 사고를 당한 작업자는 모두 죽었다.
동료의 추락 사고…3년 뒤 되풀이된 비극
모델이 되고 싶었다. 2013년 나고 자란 부산을 떠나 서울에 올라온 것도 모델 학원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학원비는커녕 생활비 마련부터 쉽지 않았다. 2016년 7월 고공 로프 작업을 시작했다. 벌이가 좋았고, 무엇보다 남는 시간에 모델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섭고 위험한 일이었지만 괘념치 않았다. 차준호는 생각했다. ‘내가 조심하면 되지, 설마 뭔 일이야 있겠어?’ 하지만 죽음의 공포는 고공 작업을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해, 차준호에게도 찾아왔다.
2018년 9월 경기 분당의 한 병원 외벽을 청소할 때였다. 옆에서 작업하던 세살 어린 동료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추락사였다. 로프가 풀리면서 8층 높이에서 그대로 떨어졌다. 작업자의 생명을 지켜줄 구명줄은 없었다. 사고는 차준호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부인 강소현은 그때 상황을 생생히 기억한다. “상준(가명)씨는 출장길 룸메이트였어요.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남편이 석달 넘게 일을 못 나갔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일 나갈 자신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런 남편을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힘들었어요.”
비극은 3년 뒤 차준호에게 찾아왔다. 당시 차준호는 허리 디스크를 앓고 있었다. 디스크는 달비계(로프에 매단 작업 의자)에 앉아 양옆으로 움직여가며 일하는 고공 로프 노동자들이 흔히 걸리는 질환이다.
허리 통증이 심해 다른 일을 찾고 있던 차준호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청소업체 대표가 전화를 걸어왔다. 인천 송도의 고층 아파트라고 했다. 거절하기 어려웠다. 차준호가 떨어진 뒤 사고를 조사한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구명줄(작업 로프와 별도로 작업자의 몸에 다는 안전줄) 설치가 안 된 상태에서 달비계를 연결하는 로프가 간판 모서리에 쓸려 끊어졌다고 했다.
‘구명줄 미설치’. 시간과 장소는 달랐지만 사고 원인은 상준씨의 경우와 똑같았다. 우연일까? 그렇지 않다.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2018~2020년 3년간 발생한 고공 로프 추락 사고 10건 가운데 2건꼴에서 구명줄이 없었다. 예고된 죽음이었을까, 운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고공 로프 추락 사망자 명단에 차준호는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차준호씨가 외벽 청소 작업 중 추락해 숨진 장소. 이승욱 기자
매달 1명이 떨어져 죽는다…그 뒤엔 탁상행정
고공 로프 작업자는 한달에 한명꼴로 떨어져 죽는다. 빈도가 낮지 않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이 2021년에 펴낸 보고서(<달비계 작업안전 기술 개선 연구>) 를 보면, 2011~20년 작업대에서 떨어져 숨진 고공 로프 노동자는 149명이다. 1년에 14.9명, 한달에 한명이 조금 넘는다. 고용노동부가 정의당 배진교 의원실에 제출한 ‘2020~22년 10월 고공 로프 작업 사망 사고 현황’에도 해당 기간에 39명이 숨진 것으로 나와 있다.
사고가 반복되는 건 ‘구조적 원인’이 있다는 뜻이다. 작업자의 실수나 부주의 탓만은 아니란 얘기다. 구조적 원인을 가늠할 수 있는 사고가 10월10일 발생했다. 이번에도 인천 송도였다. 아파트 외벽 청소 작업을 하던 30대 노동자 최정도(가명)가 사고를 당해 숨졌는데, 현장에선 갈기갈기 찢긴 로프 보호대가 발견됐다. 재질은 천이었다. 보호대가 로프를 ‘보호’하지 못해 사람이 떨어진 것이다.
이 사건은 지난해 차준호의 사고를 소환했다. 차준호가 죽은 뒤 고용노동부는 사업자에게 로프 보호대 지급 의무를 강화했던 것이다. 차준호는 보호대 없이 고무장갑을 로프 아래 덧댄 채 작업을 하다 줄이 끊겨 추락했다. 그런데 10월의 사고는 보호대가 있어도 로프가 끊어져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차준호의 친구 현명수(가명)는 “천으로 된 로프 보호대를 지급하는 곳이 많은데 이런 보호대는 로프를 전혀 보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명수 역시 고공 로프 작업을 해본 경험이 있다.
보호대는 왜 로프 절단을 막지도, 작업자의 생명을 지키지도 못했을까. 고용노동부가 사용자의 보호대 지급을 의무화하면서도 보호대의 재질과 강도에 대한 별도 규정은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호대는 재질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사업자가 굳이 비싼 돈을 들여 튼튼한 보호대를 작업자에게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길을 정부가 열어준 것이다. 실제로 포털사이트에 ‘로프 보호대’를 검색하면 다양한 재질의 보호대가 검색된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탁상행정이 사람을 죽인 거죠. 이런 사고가 내일 또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요. 로프 보호대 규정이 규칙에 포함됐지만, 작업자들은 전처럼 자기들이 직접 만든 로프 보호대를 가지고 다닙니다.” 현명수의 목소리는 잔뜩 격앙돼 있었다.
4월6일 오후 119구급대원들이 대구 서구 비산동 요양원 건물에서 떨어진 노동자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있다. 대구소방안전본부 제공
복잡한 계약구조…이대로면 참사 반복
차준호의 사고 뒤 민형사 재판이 이어졌다. 재판 과정을 들여다보면 사고의 또 다른 구조적 원인이 포착된다. 책임 소재를 가리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노동·사업 계약 구조다.
차준호는 ‘따박이’였다. 한곳에 소속되지 않고 일감을 찾아 ‘따박따박’ 오간다는 뜻이 담긴 ‘공사판 은어’다. 차준호는 특정 업체에 상시 고용돼 있지 않았다. 친분이 있는 업체들로부터 일을 소개받을 때마다 로프를 탔다.
유족의 법률대리인이었던 법무법인 감천 소속 최경준 변호사는 “차준호가 사고를 당한 작업장은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ㄱ청소업체와 외벽 청소 계약을 했다. 하지만 청소업체는 ‘통행세’(알선료)만 받고 ㄴ업체, ㄷ업체와 일감 계약을 맺고 있었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차준호를 포함한 7명이 있었는데 안전책임자 김창호(가명·37)를 빼면 ㄱ업체와 근로계약을 맺은 노동자는 4명, ㄴ업체와 계약한 노동자는 차준호 등 2명이었다.
ㄱ업체는 고용부 조사 결과 김창호가 실질적 주인으로 드러났다. 이런 다단계·차명 계약 구조는 현장 안전관리는 물론 사고 뒤 책임 소재 규명도 어렵게 한다.
차준호의 동료들은 이런 다단계·차명 계약 시스템 안에서 차준호가 숨졌다고 입을 모은다. 현명수의 말이다. “8월25일 처음 작업에 들어갔는데, 우리한테 구명줄을 차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때 아파트의 다른 동에서 일하는 작업자들도 모두 구명줄을 안 차고 있었어요.” 업체는 왜 구명줄을 채우지 않았을까? 이어지는 현명수의 증언에 답이 있었다. “구명줄이 저렴한 것은 6만∼7만원 해요. 죄다 중국산이죠. 그런데 진짜 짱짱한 건 70만원이 넘어요. 업체한텐 이게 불요불급한 지출인 거죠.”
이와 관련해 업체와 김씨 쪽은 사고 당시 바람이 많이 불어 구명줄과 로프가 꼬였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안전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작업자들과 상의한 뒤 구명줄을 채우지 않았다고 해명한다.
다단계 계약 구조 아래서 안전관리 비용은 하청에 고스란히 전가된다. 영세한 하청업체는 비용을 어떻게든 줄이려고 한다.
인천지방법원 형사1단독 오기두 판사는 지난 9월28일 업무상과실치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안전책임자 김창호에게 안전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어 징역 1년을, 산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업체엔 벌금 8500만원을 선고했다. 검찰 구형은 물론 유사 사건에 대한 통상적인 판결보다 강한 처벌이다. 재판부는 “(유사 사건에) 아주 가벼운 벌금형이 선고되고 있다. 시정돼야 마땅하다. 이런 형량으로는 산업 안전사고 방지는 요원할 것”이라고 했다. 안전책임자 김창호와 업체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은 23일 열린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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